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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2014년 12월 14일
그렇게 우리 셋 (나, 큰딸 코티, 작은아들 후앙) 은 리마의 Centro Historico로 돌아왔다.
코티의 집에서 구시가지까지는 택시 비슷한 걸 탔는데, 아무래도 흔한 불법 영업 택시의 느낌이었다. 외관 어디를 봐도 Taxi라고 쓰여 있지 않았어....;ㅅ; 심란한 마음으로 올라가는 미터기 요금을 지켜보았다. 그래도 남미에서의 첫 무허가 택시 경험은 이렇게 현지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름대로 안전하게.
내리자마자 코티는 '얘한테 구시가지를 전부 보여주고 말겠어!!' 라는 기세로 나를 부지런히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미 오후 4시 즈음. 사실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문을 닫기 시작할 시간이었다. 때문에 코티의 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고, 나와 후앙은 쉴새없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윽 그리고 페루 사람들은 성질이 정말 급하다 ㅋㅋㅋ 꼭 우리나라 사람들 같아서 정겨운 것. 초록불인데 앞 차가 조금이라도 버벅거린다 싶으면 뒤에 서 있는 모든 차가 동시에 클락션을 울려댄다. 마트나 약국에 줄을 서 있는데 맨 앞사람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차례가 넘어가지 않는다 싶으면 역시나 몇명이 우르르 몰려와서 무슨 일이 났나 물어보기 시작한다. 난리도 아닌 것ㅋㅋㅋㅋㅋㅋ코티 역시 '성격 급한 페루 사람'의 범주에 들어갔고..)
먼저 방문한 곳은 Santa Rosa 성당
새빨갛고 하얀 외관이 참 예뻐서 Rosa라는 성인 이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현재 가톨릭 성인들 중 상당수가 라틴아메리카 출신이라고 하는데, 이 Santa Rosa 역시 페루의 성녀라고 한다.
특히 매년 8월 30일 산타 로사의 축일에는 리마에서 큰 축제가 열린다고
여기저기 놓인 꽃과 양초들을 보니 비단 그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이분의 인기는 대단한 듯 싶었다.
정원을 둘러보다가 우물 하나를 발견. 안을 들여다보니 편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소원을 적은 편지를 이 우물 안에 던지면 산타 로사가 이루어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우물 근처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하루에 못 해도 백여 통은 쌓일 것 같은데 이 편지들은 전부 어디로 가는 걸까
Iglesia de Santa Rosa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코티가 나를 잡아끌어 두 번째 교회에 왔다 (고마워 칭구야 ㅠㅠ)
Las Nazarenas 교회는 어느 화가 (코티는 화가이자 성인이라고 말했던 것 같지만 풀네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의 모자이크 벽화로 유명한 곳. 그림을 그리고 얼마 뒤 리마에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났고, 모든 게 무너졌지만 저 그림이 그려진 벽만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코티가 빠른 스페인어로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해 준 덕분에 지금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어서 그저 고마울 뿐. 이날의 나는 행운이 넘쳤네
리딩튜터를 풀다가 토플 영어듣기를 하는 기분으로 두뇌 풀가동하며 다녔던 것은 덤..
리마의 성당들 역시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 그 와중에 멕시코에서 본 것들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 미묘함을 설명하지 못하는 나=건축알못..
그렇게 성당 2개를 약 10분만에 클리어하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한다.
아까는 아주머니와 겁에 질려 바라보기만 했던 휑한 리마의 구시가지 거리를 이번엔 셋이서 씩씩하게 활보할 수 있어 행복했다 흡
이런 사랑스런 풍경도 다 보고
아르마스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과 문을 연 가게들이 많았다. 혼자 일요일에 오더라도 여기까지만 잘 오면 안심일 듯.
이내 도착한 리마의 카테드랄과 아르마스 광장
현지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혼자 왔다면 오른손으로는 가방을 꼭 쥐고 왼손으로는 카메라 스트랩을 칭칭 감고 혹시 주변에 수상한 인간들이 없나 레이더 풀가동하며 다녔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현지인 두 명과 함께. 아르마스 광장을 내집처럼 활보할 수 있어 호홋
광장 한켠에는 대통령궁이 있다. 흔한 아르마스 광장의 풍경
여기도 크리스마스가 왔다. 어느덧 10일 정도밖에 안 남은 시점
다음으로 코티를 따라간 곳은 Convento Santo Domingo라는 곳이다.
아름다운 수도원. 리마 구시가지에 온 지 20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성당들을 몇 개나 보고 있는 거지
이거시 바로 내가 구시가지를 사랑하는 EU
천장이 매우 독특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코티에 따르면 니카라과의 전통 양식
내부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Patio가 있었다.
리마에 볼 게 없다는 얘기는 몇 개월 전 멕시코로 출발하기도 전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기 때문에 사실 나는 이날 대책없이 구시가지로 가면서도, 볼거리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움의 폭격(!)을 맞았던 것이다. 웅장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색깔은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수많은 식민지풍의 건물들이 리마 구시가지에는 수두룩했다. 며칠 전 갔던 메리다 생각이 나네. 이런 건물들이 바다에 접한 도시들의 특징인지, 식민지 지배층이 주로 살았던 동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결론은 여러분 리마 구시가지 꼭 와주세요 ㅜㅠ
정원을 팔딱팔딱 뛰어다니다가 발견한 타일. 1620년이라니 무려 400년 전
아마도 예전에 스페인 신부들이 이용했을 도서관도 나왔다. 저분들은 모형이었겠지...? 그랬을거야...
그레고리안 챈트 악보를 실제로 봐서 신기
페루의 국민 성녀인 듯한 산타 로사도 또 만났다. 200솔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는 인물이었던 거시다....귀하시 분이었어...
결국 페루를 떠나기 전까지 200솔짜리는 보지 못했지만, 코티의 말로는 종종 쓰이는 지폐라고 하니 죽기 전에 볼 일이 있겠지
코티가 찍어준 ㄴ ㅏ..머리는 뭔데 지져스 같은 것
그치만 페루에서는 못생겨도 괜찮아 (앞으로의 사진들을 보면 이때는 봐줄만한 편이다..)
안쪽에 숨어있던 예배당까지 살뜰히 보고 나온다.
페루는 멕시코 못지 않게 독실한 가톨릭 국가인데 (식민 지배 영향이 강한 것과 비례) 그래서인지 늘 성당 내부에는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시 돌아와서 리마의 카테드랄!
일요일의 이 시간이 미사를 보는 시간대였는지는 몰라도, 모든 성당들마다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이곳 대성당도 마찬가지였다.
카테드랄 바로 옆에는 대주교 궁 (Palacio Arzobispal de Lima) 이 있다 하지만 클로즈드 흑흑
어느새 5시가 넘어버렸던 시간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코티가 가장 많이 해준 말은 '여기도 안에 박물관처럼 되어 있는데 지금은 닫아버렸어' 였다. 이 친구 이런 걸 정말 좋아하는구나....그리고 또 리마란 곳은 얼마나 볼거리로 가득한 도시인지. 내가 코티였어도 모처럼 만난 외국인 친구에게 최대한 많은 걸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나를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미 여행에서 이런 걸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오지 않기 때문에, 리마라는 도시가 지닌 매력을 50%도 발견하지 못하고 이곳을 떠날 거라는 사실이었다.
아무튼 내가 론리플래닛과 남미사랑 카페로 배웠던 리마는 무법천지의 도시였지만ㅡ물론 외곽으로 나가면 무법천지 맞음;; ㅡ 사실은 문화와 예술과 사랑과 러브로 가득한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걸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 해가 지고 있었던 구시가지의 거리들
그치만 내가 오늘 조금만 더 이른 시간에 구시가지행 버스를 탔다면, 아마 이 친절한 사람들은 못 만나고 혼자 쓸쓸히 여길 배회했겠지
*
다음으로 코티와 후앙을 따라서 간 곳은 Casa de la Literatura.
(페루 사람들이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페루 출신 문인들에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남미문학사 들으며 배운 작가들을 보며 아는 척을 하니 코티가 굉장히 좋아해서 뿌듯했음...응...? 뭔가 말 잘 듣는 학생이 된 기분
이곳은 Convento de San Francisco. 지하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유명한 곳이지만 시간이 늦은 관계로 외관만 보고 패쓰하였다..
살다 보면 뭐 리마 한번쯤은 또 가겠지 뭐 ((정신승리))
이어서 국회의사당을 지나서 리마의 차이나타운에 가보기로 했다
중남미 나라들의 국기가 쭈욱 걸려 있는 것이 어쩐지 인상적
국회의사당 옆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차이나타운이 나온다. 마치 주말 오후의 명동처럼 혼잡하여...누가 들고 튈까봐 카메라는 꺼내지 못함
그저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 와중에 (아무리 전세계 어딜 가나 있는 차이나타운이라고는 하지만) 리마에도 차이나타운이 있다니
인파를 헤집으며 도착한 곳은 코티가 제일 좋아한다는 아이스크림 가게
며칠 뒤면 가게 될 아레키파가 페루에서 아이스크림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라는데, 그곳에서 쓰는 우유와 제조법 대로 만드는 몇 안 되는 집이라고 한다. 특히 유명하다는 치즈 아이스크림은 정말로 고소하고 맛있었다. 뭐랄까 그리고 딱 당분이 필요한 시점이었쓰....
*
먹으면서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고, 코티의 1.7배속 ebs 강의 같던 리마에 대한 설명은 2.0배속으로 올라갔으며.. 내가 돈을 내려고 할 때마다 극구 사양하며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박물관 입장료까지 내주던 이 착한 친구들에게 너무 늦은 시간까지 신세를 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 박물관 (여러 민속 공예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었음) 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리마 시티 투어는 종료!
코티는 마지막까지 매우 상냥히 (그리고 급하게) 택시를 잡아 나를 태워 보내 주었다. 넘나 고마웠지만 꼭 안아주는 것 밖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네 ㅜ0ㅜ 그건 그렇고 이야....내가 리마에서 택시를 혼자 타다니.... 이대로 변두리로 실려가 장기적출을 당하는 건 아니겠지 하며 험하고 극단적인 상상을 해보았지만 아저씨는 무척 좋은 분이셨음. 그러고 보니 오늘만 해도 벌써 메트로버스 1번, 시내버스 2번, 봉고차 1번, 무면허 택시 1번을 탔는데 이거....쓸데없이 너무 많은 걸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은ㄷ....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법(?)택시를 1회 탐으로써 어마어마한 하루가 종료되었다. 창밖으로 보는 리마는 서울과 다를 것 없는, 조금은 바쁘고 정신없지만 곳곳에 따스한 가로등 불빛이 있는 도시였다. 불빛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가득한.
숙소에 도착하여 나의 토르 룸메(..)를 만나 통성명도 했다
오늘 아침에 본 뒷모습과는 달리 앞모습은 귀여운 곰돌이 같은 스위스 친구였음. 여기서 만난 현지인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눌러 앉은 지 일주일이 지나버렸고, 앞으로 일주일을 더 리마에서 지낼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지???? 역시 페루 사람들 나이스하지???? 하며 신나서 얘기하다가 꿀잠. 내일은 한가롭게 미라플로레스 근방을 거닐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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