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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9일
리마를 거쳐 쿠스코로 가는 날이다! 웰컴 투 페루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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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버스는 정말 내 집마냥 편하다. 180도로 넘어가는 의자에 떡하니 누워 침까지 질질 흘리며 잘 수 있다니. 그렇게 약 8시간 동안 세상 모르고 자다가 일어나니. 옆자리의 사이몬 아저씨가 너 계속 코 골면서 잤다고 매우 실감나게 재연을 해 주기 시작했다. 아니 이 사람이...? 다행히도 침 흘린건 보지 못했나 보다....
원래 리마 도착 예정시간은 5시 반이었지만 4시 10분에 이미 버스 불이 켜지고 크루즈 델 수르의 상징인 기상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착한 과속 인정합니다. 뭐 나야 비행기 시간도 반강제로 땡겨졌겠다, 공항에 빨리 가 있을 수 있으니 좋지 뭐 하며 주섬주섬 담요와 베개를 반납하고, 자느라고 먹지 못했던 간식을 알뜰히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이었다. 새벽의 리마가 여전히 두려운 나는 든든한 덩치를 가진 사이몬과 택시를 같이 타기로 했다.
내리자마자 Aeropuerto?를 외치는 택시기사분에게 값을 물으니 25솔이라고 한다. 옆에서 우물쭈물하는 사이몬을 질질 끌고 일단 터미널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아저씨의 차는 아까의 차보다는 훨씬 덜 미더웠지만 15솔이라는 가격을 제시하셨다. 와! 엄청 싸졌어! 하고 사이몬이 갑작스런 하이톤으로 기뻐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끔 보면 참 귀여운 서양 아조씨들...
그렇게 무사히 택시에 탑승하야 공항에 도착
체크인까지 끝내고 사이몬을 보내고, 홀로 어딜 가야 하나 방황하다가 스타벅스에 갔다. 스벅이란 무엇인가. 스벅은 굉장한 마음의 고향이다. 어딜 가나 똑같은 인테리어와 스벅 재즈....난 거기서 행복을 느껴....게다가 며칠 전 미라플로레스에서 들렀던 지점과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똑같았는지, 내 스마트폰에서는 이미 콸콸콸 와이파이가 터지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미 여행을 하며 유심칩을 안 썼다. 돈이 아깝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그냥 멕시코 유심으로 매번 와이파이에 기생하며 살았음. 그 와중에 가끔씩 2G가 터져서 신기하기도 했다. 통신망의 세계란..)
그치만 불행히도 폰 배터리가 없었기에 쭈구리처럼 커피만 홀짝홀짝 마시다가 게이트로 가야만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만난 잉카콜라와 봉지째 서빙된 땅콩 / 이때 한창 땅콩항공이 핫했기 때문에 봉지를 보자마자 웃음부터 나왔다.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만 비행기 옆자리의 미국 아저씨도 사이몬 만큼이나 말이 많았다. 왜들 이러지 내가 어제 오늘 리액션이 좀 격하나....다들 왜 이렇게 신나서 얘기하는 거신가.... 알래스카가 추워서 해마다 쿠스코로 피신을 온다는 타미 아저씨. 이때 나는 나라를 구했는지 운좋게 비상구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타미 아저씨는 워낙에 장신이어서 얄짤 없이 비상구 자리에만 앉는다고 한다.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내 발 앞의 공간이 왠지 민망하였네.. 비행기 창밖으로는 안데스 산맥의 풍경이 보였고, 계속해서 귀가 먹먹해져 왔다.
구름 사이로 보이던 안데스의 무지막지한 산줄기
착륙하는 곳이 고산지대여서 그런지, 쿠스코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하강도 짧게 느껴졌다. 숨돌릴 틈도 없이 착륙. 잉카콜라 한잔에 소로체를 털어넣고, 부디 해발 3400미터의 쿠스코에서도 고산병 없이 훨훨 날아다닐 수 있길 빌었다.
그렇게 타미 아저씨의 시원한 휴가(....)를 기원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혼자가 되어 호스텔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사실 오늘은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서 자고, 내일 마추픽추를 방문했다가 쿠스코로 돌아와 다시 이곳에서 자는 것이 일정이었다. )
목적지가 아르마스 광장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택시아저씨께서는 10솔이나 값을 더 불렀다. 흥정머신 김귤희는 어디론가 가 버렸고 귀찮은 마음에 그냥 탔다. 들쑥날쑥하는 나의 전투력.....그렇게 거금을 내고 호스텔에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다음날과 다다음날의 숙박을 예약한 다음에 밖으로 나왔다.
택시아저씨 말대로, 내 호스텔이 있는 Calle Fierro와 아르마스 광장은 걸어서 15분 정도로 꽤 멀다. 원래 숙소 예약할 때 위치를 굉장히 꼼꼼히 보곤 했는데 남미에서는 왠지 아니었닼ㅋㅋㅋㅋㅋㅋ 싼 곳으로 무조건 잡다 보니 종종 갱장히 터무니없는 곳에 위치한 숙소에 머물곤 했다.
오늘 해야 할 게 많았지만 밤버스+비행기 콤보로 머릿속에 안개가 가득 껴서였을까.. 뭐부터 해야 하고 뭘 찾아봐야 하는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정신을 반쯤 놓고 걷다 보니 빨간 지붕들과 하얀 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티비에서 혹은 책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수없이 보던 그 광경이었다. 와 미친? 제가 진짜 쿠스코에 있는 건가요 지금?
아직 이성이 반밖에 안 돌아왔는지 이 모든 게 현실과 백만 광년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뭐부터 해야 하지.... 하며 더 걸으니 마침내 아르마스 광장이 나왔다
구름 가득한 날이었지만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하자 (기분 탓인지) 온 세상이 환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흑
곳곳의 커다란 성당들. 이 높은 도시까지 와서 이렇게나 큰 성당을 지어놓은 스페인 사람들은 정말이지..
어딜 가나 해맑게 뛰어노는 아가들과
어딜 가나 자릴 잘 잡고 있는 멍뭉이들도 있는 이곳은 바로 페루의 고도 쿠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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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광장....광장.....성당....크다...하며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걷던 내게 이내 수많은 여행사 삐끼분들이 붙었다. 친구? 친구? 를 연거푸 외치던 한 아저씨에게 모라이-살리네라스 투어 가격을 물어보니 '얼마에 하고 싶은데?' 하고 되묻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놓고 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지금 투어 시세도 안 알아보고 협상부터 하려 했다니 나새끠 뭐 하는 것이죠?? 무지한 무지랭이 김귤희의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우선 정보 검색부터 하러 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향한 곳은 아르마스 광장의 명물(?) 스타벅스. 아무래도 어제 아무것도 안 했더니 목표의식을 잃었나 봐...
전세계 어딜 가나 마음의 고향
당이 떨어진 것을 느끼며 초콜릿 쿠키를 와구와구 먹었다. 돌이켜보면 아침부터 먹은 거라곤 커피 한 잔에 잉카콜라 한 컵...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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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볼리비아 비자를 받으려면 뭐가 필요한지, 대사관까지 택시비는 얼마 정도인지, 오얀따이땀보까지 가는 콜렉티보는 어디서 얼마에 타며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서 내 숙소는 어디에 있는지....(역시나 한참 전에 예약해 놓아서 위치 따위 기억나지 않는 상태)
나 어제 와라즈에서 하루종일 빈둥거리면서 이런 거 안 알아보고 뭐했징^0^ 검색과 동시에 폭풍 캡쳐를 하려고 당시 들고 다니던 G2레기 뒤의 전원버튼과 ↓버튼을 힘차게 눌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응? 왜? 왜지? 다시 한번 눌렀다. 찰칵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야....시바.....설마 너 고장난거야? ㅠㅠㅠㅠㅠㅠ이 중요한 시점에?ㅠㅠㅜㅠㅠㅠAㅏ..결국 수첩에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불쌍하게(;;;;) 지도를 그렸다.
알아볼 수는 있으니 뭐 호ㅗ호 라고 생각하였지만 이날 밤 나는 이 초라한 지도를 들고 초라하게 길을 잃었고 결국 한국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니 너무 혼자 헤쳐나가려 하지 말자 (?)
지투레기로 인한 혼란도 잠시. 어느덧 열두시 반이었다. 쿠스코에서의 시간은 물처럼 흐르는구만. 급히 거리로 나가 택시를 잡아 5솔에 볼리비아 대사관까지 가기로 했다. 이곳의 택시들은 희한하게도 택시 표시가 없는 차들이 더 많다. 그리고 내가 탄 차 역시 표시가 없는 차네? 엌... 결국 불법 택시라는 거지. 그걸 왜 타고 나서야 깨닫는 것일까. 불법택시...강도....납치.....그래.......나는 좀 쫄았다. 택시는 내 예상보다 더 오래 씽씽 달렸다. 왜 도착을 안하냐 왜 자꾸 외곽으로 가는 것 같냐 하며 잠시 쓸데없는 걱정을 해보았다.
세상은 살만합니다그려
다행히 무사히 도착함.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에 볼리비아 대사관이 있었다.
대사관 옆에는 복사집들이 즐비해 있기 마련이다! 필요한 서류들을 팡팡 복사했다. 6장 정도에 1솔이 들었으니 한국이랑 거의 똑같았다.
볼리비아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2014년 기준) 남미 아웃 티켓/카드 앞뒤 복사본/볼리비아 숙소 예약 증명서/그리고 여권 사본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거금 주고 맞고 온 황열병 예방접종 카드는 내가 여행할 지역에서는 필요가 없단다. (2014년 기준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아마 루레나바께 등 정글 쪽으로 가지 않는 이상 안 맞아도 상관이 없나 보다) 으앙 귀한 내 시간 써가며 을지로까지 가서 맞았는뎅
오랜만에 셀프타이머를 시전하여 보았다. 이날 밤에 바로 아구아스깔리엔떼스로 갈 계획이었으므로 하루종일 배낭을 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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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필요한 서류들은 모두 갖추었고. 굳게 잠긴 영사관 철문 앞에서 소심하게 초인종을 두어 번 눌렀다. 얼굴에 '지금 날 건드리면 넌 주옥이 될테야'라고 써 있는 직원 언니가 나왔다. 무서워...무서운 사람 앞에서는 말을 잘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 달라는 대로 다 주고 쓰라는 대로 다 쓰기 시작. 주변을 둘러보니 옆에는 인도에서 온 어떤 사람이 나와 마찬가지로 눈을 내리깔고 쓰라는 대로 열심히 다 쓰고 있었다. 아아 느껴진다 동병상련. 언니가 윗층에 올라간 사이 좀 얘기를 하다가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라지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어쩌다가 이렇게 잔뜩 쫄아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인가 하니.... 얘는 심지어 비자를 받느라 오늘 3번이나 대사관을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필요한 서류가 뭔지 몰랐다고....... 직원 언니가 빡쳐 있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한국인이 4명이나 더 왔고ㅡ 직원 언니는 '다 썼어!'라는 나와 라지의 말에 '기다려'라고 0.5초만에 응대.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말인가요 선생님....눈치를 보는 와중에도 배가 고파 쥬글 것 같았다. 때마침 라지도 배가 고프다길래 대사관 언니한테 허락을 맡고 같이 건너편 레스토랑에 밥을 먹으러 간다.
여기였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5년이나 지났다고 제멋대로 하는 위치 태그 ★
둘 다 오늘의 메뉴를 시켰고, 정체불명의 수프와 소곱창 비슷한 것을 끓인 스튜가 나왔다.
온갖 재료가 든 수프. 까수엘라 같은 거였을까
이것은 Cau Cau라는 이름을 가진 페루의 대표적인 로컬 음식
우리나라 덮밥이나 하이라이스 느낌이어서 맛있었다. 남미의 향신료나 재료가 내게 조금도 이질감을 주지 못한다는 걸 여기서 이걸 흡입하며 깨달음...
위의 수프나 까우까우 둘 다 곱창 비슷한 것이 들어 있어서, 한국에서 먹던 곱창 요리들이 떠올라 반가운 마음으로 흡입하였지만. 라지는 이걸 먹으니 속이 이상해진다며 거의 먹지 못했다. 저녁 즈음에 일기를 쓰며 깨달음. 아니 이 친구 혹시 힌두교였던 것인가..그래서 아까 점원에게 고기가 닭인지 소인지 물어봤던 건가....소 안먹냐고 물어나 볼걸????? 살면서 인도사람을 처음 만나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미안해 친구야....쥬륵
후식은 페루에서 많이 난다는 과일(이름을 알려주셨는데 어려운 발음이어서 기억하지 못했읍니다)로 만든 따뜻한 푸딩 느낌의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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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대사관으로 돌아가서 비자를 드디어 받는데 열심히 쓴 서류는 확인이나 하셨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롴ㅋㅋㅋㅋ 단시간에 여권을 맡겼다가 곧바로 돌려 받으니 도장이 꽝 찍혀있었다. 무튼 볼리비아 비자 받기 나름 속전속결로 성공! 스페인어를 못하는 라지를 택시를 태워 호스텔에 무사히 떨궈 놓고 나는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콜렉티보를 타러 갔다.
정류장에 가니 정겨운 삐끼분들이 아주 많이 계셔서 어려움 없이 바로 탈 수 있었다. 이럴때 보면 남미 여행 엄청 쉬운 것 같기도.....필요할 때면 다 알아서 나한테 영업해주니까.....후훗 그렇게 오얀따이땀보로 추을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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