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4년 12월 18일



전날 개고생을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7시에 눈이 떠졌다. 창밖을 보니 어제와는 달리 환한 날씨였다.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올라오는걸 애써 꾹꾹 누르며 세수를 했다. 어차피 산은 또 비가 올거야^.^ 오늘 트래킹 가는 사람들도 고생 쫌 해버려랏^.^ 호호호..... (나쁜 생각)
생각보다 가뿐한 몸 상태 덕에, 잠시 빙하를 갈지 말지를 놓고 내적 갈등을 겪었지만 여전히 축축한 나의 러닝화를 보고는 이내 맘을 접었다.

체크아웃을 늦게 한다고 에스떼반에게 말하고는, 별 생각 없이 지메일을 열었다. 내일 오전에 예약해 놓은 스타페루 항공사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비행기 시간이 9시 반에서 8시 반으로 바뀌었으니 빨리 오라고. 뭐지 이 쿨하고 갑작스러운 통보는.... 새벽에 리마 공항에 도착하는 게 다행이었달까. 일단 알았다고 메일을 보내 놓고 노트북을 챙겨 카페 안디노로 갔다. 



호스텔에서 10분이면 올 수 있는 안디노였지만 훗후후 난 그렇게 호락호락한 길치가 아니라구 << ???




내부는 뭐랄까,, 그렇지 이래야 내 와라즈 카페지! 의 느낌...

크고 넓고 와이파이까지 빵빵한 데다가(순간 페루 아닌줄) 심지어 2층에도 어마어마한 공간이 있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만 유명한 줄 알았지만 현지인들도 끊임없이 몰려왔고. 아직까지 솔--원 환전이 익숙하지 않아 메뉴판을 펼쳐 놓고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다가, 차이티와 감자전 비스무리한 음식 (이름은 감자 케이크였지만)을 시켰다.




5분 후 아주머니가 들고 와주신 차이티. 다섯 번도 넘게 따라마실 정도로 양이 많았는데 맛은 호불호가 갈릴 독특한 맛이었다. 안데스 방식으로 만든 것이라고 함



그리고 이거슨 충격과 공포와 사랑의 감자케이크

이건 아무리 봐도 1인분이 아닌데욬ㅋㅋㅋ 와라즈의 미친 듯한 가성비에 몸둘 바를 모르겠는 것...아마 쿠스코만 가도 물가가 이 정도로 후하진 않겠지. 무튼 기쁜 맘으로 우걱우걱 열심히 먹고 초코쉐이크도 또 시켜서 토하기 직전까지 먹으며 네이버 블로그 사진 업로드를 끝냈다. 덕분에 점심은 패스할 수 있게 되었닼




다 먹고는 2층 테라스 자리에 가서 와라즈 시내 구경. 역시나 별거 없지만 정감 가는 모습





묘한 매력의 와라즈. 흙먼지 날리고 사람 바글바글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떠나기 싫었던 건 왜였을까




사람들을 보는 것도 그저 즐겁고



호스텔 앞 거리는 늘 이렇게 시장바닥 같았다



나으 도미토리. 남미에는 이렇게 2층침대가 아니라 그냥 싱글침대를 여러 개 놓은 도미토리가 종종 있더라

노트북을 넣어두고, 러닝화를 창가에 널어 놓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전날 벤에게 예약해 달라고 부탁했던 리마행 버스는 어찌 된 거지...하는 생각이 들어 아킬포 사무실로 간다. 때마침 서양 사람들이 우르르 체크인을 했는지, 트래킹 설명을 단체로 듣는 중이어서 벤은 너무 바빠보였다. 구석에서 쭈굴거리고 있자니 레오가 와서 놀아주었다. 아킬포 형제들 중 잉여를 담당하고 있던 레오 잘 지내니...?

그리고 벤은 계속 노정신인 것처럼 보였기에 그냥 직접 버스 사무실에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은 남아 도는 게 시간이니 괜찮다


1층 현관으로 가니 막내 에스테반이 전날 만들던 akilpo 글씨를 낑낑대며 붙이고 있었다. 일해라 막내

나 어제 트래킹 했더니 다리 너무 아파,,,했더니 그건 사실 baby를 위한 트래킹이라고 쯧쯧거리는 것ㅋㅋㅋㅋㅋㅋㅋㅋ이틀 머물며 워낙에 정이 많은 친구들이라 금방 친해져서 이쯤 되니 날 보면 놀려먹을 생각밖에 안 들었낰ㅋㅋㅋ그래도 와라즈를 떠날 때 이들이 그리울 것이다


*

그렇게 터미널에 가서 예약을 확정하고

(예약 안 되어 있었다 ㄷㄷ 이놈들 진짜 날 솔거노비로 만들 참이었나...혹시 아킬포에서 예약 대행 신청한 사람이라면 필히 두세번 체크하시길)

기왕 나온 김에 동네 산책을 조금 더 해본다



곳곳이 공사중인 걸로 보니, 아마 지금쯤은 다 완성되어서 와라즈 시내가 딴판이 되었을 것 같다. 벌써 5년이나 지났는




이곳 사람들이 많이 타는 미니 택시. 만화에 나올 것만 같은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달린다.




시장 구경은 계속된다

몇 시간 뒤면 떠나야 하는 게 아쉬워서 보이는 대로 길거리 음식을 사먹었다. (....? 인과관계의 상태가...)



하나에 1솔이었던 닭꼬치. 맨 위에 옹골차게 감자도 한조각 꽂아주신다. 뼈가 오독오독 씹혔지만 훈늉한 불맛이었다. 



광장을 지나 위로 한참 올라가다가 0.7솔에 츄러스도 하나 샀다.

맛있긴 한데 전전날 E양과 사먹었던 맛을 잊지 못하겠었다. 그게 더 바삭하고 크림도 많이 들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이려나 힝....뭔가 아쉬운걸.....그래도 동전 하나로 먹을걸 손에 쥐는 이 기분 스고이



페루비안 패스트 푸드라니 매우 흥미가 돋았다 가보지 못해 아쉽네



오늘도 멍멍이들의 환심을 손쉽게 사는 나

덩치가 비슷해서 그런 거니.....아냐 나는 너희 동족이 아냐....손에 먹을 것도 없어 얘들아....



슈퍼에 들러서 다 떨어진 치약과 샴푸, 그리고 티슈도 샀다. 16일차가 되니 슬슬 생필품들이 동나는구나...(메모)

어쩐지 프로 여행자가 된 기분이네. 그렇게 장비들을 갖추고 나니 이제야 페루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쿠스코에 갈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리마에서 와라즈로 떠나왔던 그 밤처럼 좀 설레더라



그 와중에 전전날의 그 츄러스를 다시 먹기 위해 한참을 걸어서는 결국 또 내 손에 그걸 쥐고야 말았다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
20분만에 츄러스를 2개나 사먹은 이 구역의 좋은 돼지가 바로 저입니다

*
그러나 간식은 간식이고 밥은 밥이쥬? 저녁을 먹으러 닭집에 들어갔다. 남미 여행을 하면 닭을 질리게 먹는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렇네. 와라즈에서 먹은 모든 끼니가 닭과 감자튀김과 샐러드였다니. 이야 벌써 엄청나게 질리는걸? 께레따로 월마트에서 미리 쟁여놓았던 비장의 무기 일본 카레를 쓸 때가 된건가 흡



질린다 질린다 하면서도 너무 잘 쳐먹는 것 같지 않니 ^*^?

*
방에 가서 샤워를 하고 짐을 다 싸고 (late checkout 만세)
사무실에 노닥거리러 가니 이번엔 큰형 벤이 잉여 역할을 맡고 있었다. 벤의 말이 빨라질 때마다 mande? mande? 하고 되물으니 그건 멕시코에서만 쓰는 말이라고 페루에 왔으면 페루식 스페인어를 써라!!!!!! 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친구야..... 하나만 제대로 써도 신기한 경우란다... 그 와중에 계속해서 리마 도착하자마자 다시 버스표 끊어서 와라즈로 돌아오라느니, 너 못가게 니 짐 숨겨버릴 거라느닠ㅋㅋㅋㅋ하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이 사람들의 존재가 고마웠다. 실없는 영업용 멘트라고 할지라도 그랬다. 실로 좋았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이틀에 한번씩 머무는 도시를 바꾸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이런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말들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아 그래도 내가 그냥 휙휙 아무 흔적 없이 스쳐만 가고 있지는 않구나 싶다.



짐 들고 계단 내려가는 걸 도와준 레오와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옆자리의 독일 아저씨는 말이 많고 재미있었다. 지난 한 학기 내내 같이 수업을 들으며 매번 배를 잡고 웃게 만들어 줬던 독일 친구 안드레아랑 비슷한 느낌이어서, 께레따로의 중급스페인어 수업이 무척 그리워졌다ㅠㅠ 잘 지내니...?

아조씨 자리의 안전벨트가 고장난 걸 가지고 웃기다고 낄낄대다가 어느샌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렇게 페루 두 번째 도시도 클리어.


반응형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