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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에속 2016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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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서 두 번째 여행지인 세고비아까지는 마드리드로부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바쁜 여행자들이 마드리드 근교 여행지로 세고비아를 많이 택하는 이유이기도.
날씨는 늘 그렇듯 완벽. 톨레도 나한테 왜 그랬니....응.....? (쥬르르륵)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래로 펼쳐진 스페인 중부의 황량한 풍경들이 창밖으로 무심히 지나갔다.
스페인의 톨게이트는 요로케 생겼답니다
자그마한 TV도 있었으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고
뭐 어차피 세고비아에 다 도착했으니 큰 상관은 없겠지 생각했다. 그야말로 지루할 틈도 없이 빠르게 도착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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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있는 작은 arco도 지난다.
그리고 내가 탄 버스는 이 문을 지나 천천히 멈춰섰다. 뭐지....? 다 온 건가.......? 아무리 봐도 터미널 같이 생기진 않았지만 아까 세고비아 톨게이트도 통과했으니..... 다 온 거겠지.....? 약간은 어리둥절해 있는데 내 옆의 중국인 여행객이 매우 당당한 제스쳐와 표정으로 짐을 챙겨 내리는 것이었다.
아 쟤가 내리니까 나도 내려야 하는 거겠지? (?) 라는 생각으로 분주히 짐을 챙기고 짐칸에서 캐리어까지 알뜰하게 챙겨서 내렸는데
내렸는데....아무래도....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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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구글맵을 켜니 이 곳은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의 간이 정류장이었음 ^ ^ 아나 ㅅㅂ
그러고보니 그 중국인 친구 오는 내내 졸고 있었어....걔도 뭔가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황급히 잘못 내렸던 거구나......말 한마디 걸기도 전에 그는 빠르게 마을 쪽으로 사라져 버렸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후
어쩔 수 없이 여행 19일차의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세고비아 시내로 파워워킹을 시작했다.
그래도 시대가 좋아지고 구글맵이라는 게 있어서, 댕청하게 간이 정류장에 내린 나 같은 사람도 올바른 길로 구제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날씨는 환상적이었고, 불평할 틈도 없이 세고비아 외곽의 한적한 거리들을 따라 슬슬 걷다 보니 저멀리 수로교가 보인다. 흑흑 케세라세라,,
한국에 가면 이 하늘색이 많이 그립겠지
드디어 중심가에 도착. 눈물날 뻔 했다 제기럴 ㅠㅠ 너무 힘들었어....이래뵈도 20분 넘게 걸었다구......
수로를 보자마자 모든 고통이 씻겨내려간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랄까
빨리 숙소로 가서 짐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 절반, 여기 한참 서서 이 경이로운 규모의 수로를 감상하고 싶은 마음 절반으로, 사진만 몇 장 찍고 빠르게 지나쳤다.
숙소로 가는 길. 양 옆에 상점이 즐비한 흔한_구시가지의_번화가였다.
톨레도도 그렇고 세고비아도 그렇고, 더 이전의 안달루시아 도시들도 그렇고. 이런 작은 규모의, 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시내가 참 좋더라. 바르셀로나의 그라시아 거리와는 다른 느낌의 활기참이야
훌륭한 와인 샵이랍니다 여러분
그리고 숙소까지는 또 약간의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쭉쭉 가고 있자니 수많은 계단들이 와따시를 반겼기 때문....30분 동안 캐리어를 질질 끌고 있었기에 팔에 힘이라곤 없었고, 그런 나를 가엾게 여긴 어떤 청년의 도움을 받아 겨우 숙소까지 무사 도착할 수 있었다.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였던 이곳 호텔 Natura
완죠니 지쳐버린 채로 짐을 정리하는데 문득 내 니베아 복숭아 립밤이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했다. 광광...
그래서 바르셀로나에서 산 립밤을 먼저 개시함
La Chinita에 나보다 앞서 방문했던 수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강추했던 립밤인데.....아니 장난함? 뭐냐 이 뻑뻑함은.....? 크레용인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립스틱이야 그렇다 쳐도 립밤이 어떻게 이렇게 뻣뻣+뻑뻑할 수가 있죠? 아나 시붕..
광광 울면서 계단 내려가는 중
보시다시피 모든 복도에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 붙어 있는 다소 요상한 미감의 호텔이었지만....
아까도 말한 대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곳이므로 괜차나 후후,,
일단 대성당으로 가보자
숙소 근처의 건물들. 이 작은 마을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 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기어 올라온 계단....후.....힘드러쪙
그치만 저멀리 보이는 대성당의 종탑과 돔을 보아라.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져버림;ㅁ;
멕시코에 처음 갔을 때, 정확히 말하면 께레따로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났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장 높은 건물은 대성당의 종탑이었던 그곳....넘모 그리워요
홀린 듯 걸어가 마침내 도착
예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저 망할 놈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좀 치워줬으면 좋겠네
안 나오게 찍어봄 ^ㅅ^
히힛 볼 빵빵하다
연말의 목요일이라 그런지, 대성당 앞의 북적이는 광장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식당들도 문을 안 연 건지 준비시간인건지 휑하였고
이때가 아마 3시쯤 되었을까ㅡ나름 스페인 놈들이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흔한 플라자 마요르 광장의 모습
여기가 어느 광장인지 헷갈릴까 배려라도 해준다는 듯 크게 plaza mayor라고 써 주고, 국기들이 걸려 있고, 위에는 작은 시계탑이 있다. 손목시계가 없었을 때 이렇게 마을 한복판의 큰 시계를 보며 시간을 짐작했겠거니
배가 고프지만 갈 곳은 없었으므로 동네 산책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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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에는 이날 오후부터 다음날 이른 오전까지 머물 예정이었다. 작고 아담한 이 마을의 볼거리는 1.수로 2.대성당 3.알카사르였고, 그 중 하나를 이미 클리어한 상태.
넘나 배가 고픔....제게 영양소를 주세요.....
무슨 박물관이었던 것 같은데 문을 닫아서 가볼 수는 없었고
돌다 보니 다시 숙소 근처. 분수대 앞 타파스바에는 사람들이 그득그득하였다.
여유로움이 뿜뿜
수도교 쪽으로 가는 길
멋진 풍경이 보이는 전망대도 발견하였다. 저멀리 설산이 인상적이네. 역시 스페인은 내 생각보다 훨씬 추운 곳인가봐.
픽쳐레스크
오후의 햇살이 눈부셔서 잔뜩 눈을 찌푸리고 한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많이 그립겠지
그리고 저멀리 건물 틈새로 수로교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우연히 문을 연 카페도 아니고 바도 아닌 무언가를 찾아 입장하였다.
어디 앉을까 고민하다가 바 자리에 앉음
호주에서 왔다는 어떤 노부부와 잠깐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혼자 다니는 것에 대해 많이 지쳐 있을 무렵이라....그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던 것이다.....흡.....광광 울며 오징어 튀김과 띤또 데 베라노를 시킴.
요런 것들 파는 곳이었답ㄴ디ㅏ
매일매일 술맛이 꿀맛
주변에 바다도 없는 마을에서 오징어 튀김이 이렇게 맛있을 일이니???? ㅠㅠ
그렇게 살짝 취한 상태로 밖으로 나와 높디높은 수도교 아래 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고 길고 크고,,,@,@
이 오래된 돌무더기가 어째서 아직까지 마을 한복판에 서서 나를 마주하고 있는 건지 문득 그 이상한 인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옆에는 성벽이 있고. 저기 올라가면 수도교와 같은 눈높이에서 수도교를 마주볼 수 있다 (?)
그 설레는 경험은 밤으로 미루기로 하고 일단은 계속해서 밑에서 목이 빠져라 위를 올려다보기로 한다.
무슨 CG마냥 새파란 하늘도 비현실적이고
돌이켜보니, 멕시코 곳곳에도 수로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16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했을 때도, 여전히 매마른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유일한 수단이 수도교였을까나. 께레따로나 모렐리아 등 중부의 삭막한 도시들의 외곽엔 늘 수도교가 있었고, 밤이면 환하게 불을 켜서 그 자체로 황홀한 무언가가 되곤 했다. 종종 밤에 버스나 택시를 타고, 혹은 친구들의 차를 타고 그 옆을 지나칠 때가 있었는데. 몇백년 전의 그 구조물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건재하였고, 그 건재함이 왠지 무섭기도 했다.
'공간을 잔뜩 차지하고 있는' 이 수로교는 비록 오늘날 본래의 쓸모를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겠지. 물론 돌조차 억만년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인류가 멸종할 때까지 이들은 지구에 남아 있을 것이다. 지구의 표면에.
그렇게 생각해보면 오늘날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방식은 물론 효율적이고 간편하지만, 지표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고 있지 않네. 땅을 파헤쳐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하수 시설도 수로교 못지 않게 섬뜩하구나.
개소리가 길었고 이것은 세고비아 수도교의 뒷편
이 너머로도 계속해서 크고 작은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까 세고비아가 작다고 했는데 그건 지극히 관광객스러운 시선에서, 수도교와 알카사르를 일직선으로 이었을 때의 크기일 뿐이고. 실제고 그 반경 바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겠지.
해가 기우는 걸 보니 슬슬 알카사르를 보러 떠날 시간이겠다. 무심히 드리운 긴 그림자들이 인상적이었다.
오후의 햇살이 너무도 따뜻해 이날은 내내 외투를 벗고 다녔다.
입술 쥐 잡아먹었냐
가자 알카사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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