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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2016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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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지나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보다는 자동차를 위한 길이었다.
좁은 인도를 따라 매연을 뒤집어 쓰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자니 양 옆의 영어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스페인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W.C라고 쓰여진 공중 유료 화장실도. 길 위의 표지판들은 잘 깎인 나무 화살표 모양이었고, 그 위에는 유려한 영문 필체로 낯선 거리명들이 쓰여 있었다.
중간에 있던 지도 자판기. 자본주의의 수호자 영국이 바로 여기인가요 ;;
아직은 원숭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지브롤터의 상징인 야생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표지판도 종종 보였다.
잘못 줬다간 물릴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함께
어쩐지 대단히 이국적인 느낌~ㅅ~ 야자수 때문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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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두컴컴한 굴다리까지 지나, 드디어 지브롤터 시내의 초입을 알리는 Casemate Square에 도착했다!
짜잔
스페인에서 본 어느 유럽풍 광장과 다를 것 없는 정사각형의 장소였다. 차이가 있다면 정사각형의 네 변에 모두 영어로 쓰인 간판이 있다는 것?
지브롤터의 모든 길들로 통하는 이 곳
상점들 중 대부분은 지도나 마그넷, 원숭이 엽서 등을 파는 싸구려 기념품 가게였고.
나머지 대부분은 피쉬 앤 칩스와 맥주를 파는 투어리스트 식당이었다.
그렇지만 날씨가 좋아서였을까. 차양 아래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였을까. 괜히 멋진 휴양지(..)에라도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슬슬 점심시간도 가까워 오고 있었으므로, 밥 먹을 식당을 찾을 겸 동네 산책도 할 겸 마을 안쪽으로 향해 보았다. 광장의 끄트머리를 벗어나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하니 어라. 바르셀로나에서 샀던 유심이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이제서야? 영국령 들어온지 한참 되었는데요? 생각보다 혜자로운 전파....역시 전파는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었다....그렇게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휴대폰을 들고 시내 안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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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지요..
유명한 해협의 이름? 돌산이 그려진 엽서? 한국에서 지브롤터까지 가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열심히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하며 본 글들에서도, 도대체 이 동네는 어떤 분위기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렇지만, casemate square를 지나 시내로 들어갈수록 김귤희는 지브롤터가 뭘 하는 곳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면/탈세의 천국이었던 것이다....거리 양 옆이 온통 화장품 병과 명품 가방, 시계들로 가득 찬 거대한 면세점이었다. 인천공항 탑승게이트 근처에 일렬로 늘어선 면세점들 위의 천정을 날려버리면 이런 느낌일까. 상점들의 자동 유리문 앞을 지날 때마다 독한 향수 냄새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너무 혼란한 모습이라 사진을 따로 찍지도 않았네.
그 와중에 낯선 은행을 목격. 지브롤터에 온 기념으로 파운드 주화를 소유하고 싶어 ATM 앞에서 얼쩡거려 보았지만 어쩐 일인지 내 카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뒤로 늘어선 사람들의 줄을 외면하지 못해 소심하게 돌아섬..
(거의 모든 가게에서 유로도 취급하고 있지만 환율이 나빴으므로, 반나절~하루 이상 머무르며 돈을 쓸 계획이라면 파운드로 소비하는 것을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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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본 이런 건물도 있었고. 아마 영국식 교회였을까
예쁜 우체통도 보이고. 다행히 초입의 면세점 천국(지옥이었을까)을 지나고 나니 제법 한적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동경하던 막스 앤 스펜서도 보았따!!!
이 맛에 영국령 땅을 밟았지!!!! (예?;;;)
구경을 위해 잠시 안에 들어가 보았다 후훗
파운드로 써 있는 탓에 이게 얼마라는 건지는 당최 감이 오지 않았고
예쁘게 포장된 낯선 먹거리들이 가득해 괜시리 뭐라도 한움쿰 집어오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다행히 평생의 자제력 다 써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밖으로 나옴;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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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구경을 마치니 굉장히 지쳐버리고 말았다. 마음에 드는 음식점도 딱히 없다. 결국 다시 아까의 혼란한 Square로 돌아가 본다..
가는 길에 만난 마그넷 자석들. 여기가 바로 빨강빨강한 영국이며!! 원숭이가 있는!! 지브롤터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떤 마그넷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깊어짐....물론 맘에 드는 게 없어서 '오늘 안에 무사히 마그넷을 사서 알헤시라스로 돌아갈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었다..
다시 돌아온 Casemate Square
아까는 미처 몰랐지만, 광장 뒷편으로 돌산이 멋지게 보였다. 이런 뷰를 보며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제 아무리 비싸고 평범한 맛의 관광객용 식당이라도 기꺼이 내 돈을 내겠어요. Shut up and take my money....하며 들어간 식당은
이런 이름의 식당이었다
혼자 와서 약간 쭈구리 되어 야외 좌석에 앉아본다. 주문한 메뉴는 당연히 피쉬 앤 칩스
왠지 영국에 왔다는 기분으로(..) 영어로 주문을 하고
막상 음식을 받고는 그라시아스! 라고 외치니 아주머니가 매우 어리둥절해 하셨던 것이 이 점심식사의 웃음 포인트였다. 껄껄
난생 처음 맛보는 피쉬 앤 칩스에 대한 소감은 역시 튀김은 뭘 튀겨도 맛있다는 말로 대체하여 본다. 그리고 난 늘 생선까스 생선커틀릿을 좋아해 왔어 ㅠㅠㅠ 다만 이 요리 한 접시에 15유로라니요. 돈 없는 배낭여행자에게는 구슬픈 물가.
터덜터덜 다시 지브롤터 시내로 들어가 본다. 추억의 원숭이 인형이 맥없이 걸려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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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 채웠으니 지브롤터에서 여행자가 할 만한 유일한 관광 활동..바로 지브롤터 돌산에 오르는 일을 해볼 것이다.
우선 케이블카 탑승하는 곳은 시내로부터 꽤 안쪽까지 들어가야 했으므로, 시내 구경도 할 겸 지브롤터에 몇 개 안 되는 길을 따라 쭉 걸어 보기로 한다.
유럽의 느낌 낭낭
물론 크리스마스가 4일 남았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국의 프랜차이즈 커피라는 Costa Coffee도 보았다.
늘 즐거운 서점 구경도 잠시 해 주고
시내버스도 스치듯 구경. 이런 깔끔한 시내버스는 살면서 처음 보네
맥없이 늘어져 있는 영국 국기 아래도 지난다. 지브롤터 시내 곳곳에는 이렇게 아주 오래 된 식민지풍 건물들이 있었는데, 초입의 혼란스러운 면세점 거리와는 말 그대로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독특함. 영국 신문이 있다고 영어로 광고 문구가 나붙는 세상. 이런 세상은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없을 것이다.
이 길이 맞나 싶은 한적한 동네를 거쳐, 드디어 케이블카 탑승하는 곳 코앞까지 당도하였다.
내 돈 주고 올라가서 원숭이들에게 바짝 쫄고 온 돌산 스토리는 투비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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