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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8일



어느 새 떠돌아다닌 26번째 날이 되었다. 볼리비아 여행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었고. 



오늘은 세 번째 볼리비아 도시인 수크레로 가는 날이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 비행기를 타기로 했지만, 물론 가장 싼 비행기로 끊었기 때문에 출발 시간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와 같은 건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억지로 눈을 뜨고 맞이한 새벽 네시 사십분의 도미토리.... 곤히 잠든 20개의 침대들 틈에서 혼자 부스럭거리며 바삐 짐을 쌌다. 세수....그래 세수는 포기하자... 


이른 시간에 깨워서 짜증이 날 만도 하지만 그저 친절했던 호스텔 스탭이 불러 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차갑고 뿌연 공기 속에서 빛나고 있는 수십 수백 개의 불빛이었다. 처음 라파즈에 왔을 때 본 풍경과 좋은 수미상관을 이루는구나.... 나도 몰랐던 나의 대도시 취향(?)을 남미에 와서 발견한 거였는지는 몰라도, 남들이 볼 거 없다던 리마와 라파즈가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다. 며칠 여유를 가지고 더 머물렀다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했다. 어제 B오빠가 알려준 햄버거도 먹어봤으면 더 좋았을걸. 간밤에 검색하다가 나온 일식집도 맛나보였는데. 하고 생각의 끝은 어김없이 먹지 못한 먹을 것에 대한 미련이다.




라파스 -> 코차밤바 -> 수크레로 이어지는 볼리비아 국내선 체험기 시작이요


도착한 엘 알토 공항은 이게 과연 한 나라의 가장 좋은 공항인가......싶을 정도로 작고 허름한 규모. 울렁거리는 배를 타고 티티카카를 건너온 그 순간 이후부터 어쩐지 계속해서 볼리비아의 경제적 상황을 실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시로 갈수록 어두운 면이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니까.


*

체크인을 하고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여행자들의 좋은 친구 스타벅스와 서브웨이/ㅁ/ 

왠지 매운 치킨 샌드위치를 골랐고,,그렇게 아침부터 불타는 음식을 먹고 후회하며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 코차밤바로 가는 비행기 탑승.




서울에서 제주도로 가는 시간보다도 덜 걸려서 도착했다. 


라파즈와 수크레와 더불어 볼리비아의 거점 도시인 코차밤바는, 원래 볼리비아 여행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맨 마지막에 급히 빼버린 도시였네요. KOICA 단원분들과 봉사자들이 유난히 많이 머무는 곳이라 어떤 곳인지 좀 궁금하기도 했는데 아쉽게 되었당. 다시 비행기에 타고 30분을 더 날아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수크레에 도착.




볼리비아의 한 가운데에 있다



공항 어케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나네


미리 봐 놓았던 호스텔까지 또 택시를 탔다. 아침부터 2택시 2비행기....찌들어 간다.....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도 있었던 것 같지만 캐리어를 끌고 다녔기에 선택지가 없는 게 매번 아쉬웠네요





내려서 숙소로 가는 길에 벌써 들떠버린 마음....이게 다 수크레가 이렇게나 예뻐서이다....(๑˃̶͈̀o˂̶͈́๑)


*

그러나 점찍어 두었던 숙소에는 남은 침대가 없었다 (ㅠㅠ) 아니 잠깐만요 와이파이도 없이 땡볕 아래서 숙소를 다시 찾아야 하는 건 돌발상황이잖아요???? 


눈앞이 캄캄했지만 일단 나의 짐덩이를 이끌고 열심히 카테드랄이 있는 광장까지 걸어간다. 널린 게 숙소겠지? 싶었지만 어쩐지 주위를 둘러봐도 호스텔은 보이지 않는다. 그 상태로 근처의 골목들을 배회하며, 슬슬 캐리어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팔이 아프고 배낭을 맨 어깨가 무거워져 올 무렵. 시계를 보니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와....나 한 시간 동안 숙소 하나 못 찾았네ㅋㅋㅋㅋㅋㅋㅋ 처음 갔던 호스텔 말고는 아무런 숙소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수크레 어디에 호스텔들이 몰려있을지 나는 감조차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동네는 또 왜 이렇게 더웠던 건지, 입고 있는 스웨터 안으로 땀이 뻘뻘 나기 시작했다. 네.. 사실 땀 때문에 전투력을 급격히 상실하였읍니다. 그래서




좀 전에 들어갔다가 가격을 보고 흠칫 놀라 나왔덤 광장 바로 옆의 호텔로 들어갔다. 


1박에 37달러를 내고 약간 습한 냄새가 나지만 아주 넓은 개인실을 얻었다. 라파즈에서 20인실에 잤으니 수크레에서는 돈좀 써도 되지 않겄냐....오랜만에 와이파이를 되찾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돈 낸 만큼 인터넷은 빠르네'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 방 바로 앞에 공유기가 있었다. 럭키!



짐덩이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채로 수크레 구경을 시작한다


*

그 동안의 여행에서는 끼니 때마다 시장과 로컬 식당을 찾았지만. 수크레에서만큼은 아니리라...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맛집의 천국이었다. (2014년 기준) 수크레 여행 정보를 검색하면 맛집이랑 카페만 나오는 거 뭐냐고욬ㅋㅋㅋ중남미 여행지가 맞나...싶은 이 느낌....

암튼 그래서 나도 잔뜩 찾아 왔다 수크레 맛집 리스트. 한번 쭉 훑어본 뒤 제일 마음에 드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에서는 꽤 먼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뜻밖의 시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여기도 저기도 다 인터넷에서 본 맛집인 게 (....) 신기해서 사진 찍어 봄. 수크레에 생생정보통이라도 왔다간 건가

아니 근데 나 숙소는 하나밖에 안 찾아오고 맛집은 왜 그렇게 찾아온 건데요 ㅋㅋㅋㅋㅋㅋㅋ?? 나 왜그래 정말..






흰색 벽과 빨간 지붕은 쿠스코에도 있었지만. 그 깔끔함(?)은 수크레에 비할 수 없었다.

마을 그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의 모든 건물들은 매년 흰색으로 외벽을 새로이 칠한다고 한다.


전날 라파즈에서처럼, 오후가 되니 저 멀리서부터 먹구름의 무리가 천천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기의 볼리비아도 참 규칙적으로 비가 내리는구나. 10여분 정도 걸으며 느꼈던 수크레의 시내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황량하기까지 한 느낌이었다. 뭐지 내 수크레가 이럴 리가 없어 하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오늘은 일요일.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사람들은 집에 콕 박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던 거시다 (더군다나 연말이었어 엉엉 ㅠㅠ)






빠르게 걸어 도착한 오늘의 점심 식당은 바로 Abis y patio라는 스테이크집. 지금은 폐업했나 보네


 일단 자리에 앉아 lomo a la plancha를 시켰다. 9000원밖에 안되는 가격에 두 덩이의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감자튀김도 산더미에, 같이 나온 토마토 올리브유 샐러드도 너무너무 맛있었기에 '미친 거 아니냐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페루에선 저런 거 못봤는데ㅠㅠㅠㅠ'를 마음 속으로 연발하며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인생 최고의 칼질 가성비였다 (?) 하며 만족스럽게 빈 접시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쩐지 졸음이 밀려온다. 아까 한 시간동안 숙소 찾아다닌 게 피곤했는지는 몰라도 한동안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꾸벅꾸벅 졸다가 겨우 잠이 깨어 다시 밖으로 나가니, 어느 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뒷모습만큼이나 앞모습도 예뻤던 강쥐




ALEMAN인 이유는 아마 여기 독일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 게 아닐까






이런 저런 수크레 풍경들


달리 할 건 없는 수크레였기 때문에, 후식이나 먹어야지 하며 또 초콜릿 카페에 갔다. 



유명한 곳인지 수크레에만 몇 개의 지점이 있었고, 버스 터미널에서도 팔고 있었던 것 같다. 이름은 로맨틱하게 Para ti



초콜릿 대여섯개를 신나게 골라 포장해서 호텔까지 돌아오는 길에 내내 쏙쏙 꺼내어 즐겁게 먹었다 (저기요 걸어서 1분 거리인데요

하얀색 코코넛 맛이 찐이었다..수크레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마 맛있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

그렇게 해피하게 호텔에 발을 들이자마자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타이밍 하고는.....( •̀д•́)

더블침대가 있는,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는 호화로운 1인실에서 마추픽추 사진을 정리하다가 그대로...두어 시간쯤 잤으려나. 빗소리가 약하게 들려왔고, 창밖이 꽤나 어두워진 걸 보니 어느 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나 보다. (저기요..) 

저녁 플랜 A를 ★탕수육 테이크아웃+라파즈 맥주+왕가위 영화★로 정하고 나서 비오는 거리로 씩씩하게 걸어 나간다.



비오는 일요일의 텅 빈 거리를 먹이를 찾아 헤매었



여기서까지 야마하를 볼 줄이야



그렇게 탕수육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블로그에서 미리 봐 놓았던 중식당에 갔지만,, 문을 닫았다. 아니 저기요 사장님!!! 중국에서는 일요일에 안 쉬는 거 다 아는데요!!!!! ㅠㅠㅠ 


우선 침착하게 바로 옆의 골목으로 가서 플랜 B인 ★베지테리언 메뉴 테이크아웃+과일 스무디+토토가★를 실행하려 했다. 

그런데 채식 식당도 역시나 문을 닫았네요. 뽀킹 선데이 브레이크....시바.....플랜 C 따위는 없었지만 수크레는 여전히 먹을거리의 천국이니 굶어 죽지는 않겠지 하며 다시 왔던 길을...돌아갑니다...



우아한 방코 나시오날 건물



다시 Plaza 25 de Mayo로 돌아가 SUCRE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 집에 들어가 본다 (좀 전까지 저녁 먹겠다고 방방 뛰던 사람 맞습니다)




chirimoya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을 주문. 코파카바나에서 먹고 반해 버렸기 때문에 이미 저 낯선 과일의 이름은 나의 전두엽에 깊이 각인된 상태였다. 가게의 위치가 위치인지라 가격은 볼리비아 아이스크림 치고는 상당해서, 으으 쫌 비싼걸....아무리 수크레에 먹으러 왔다고 해도 너무 쓰는 거 아니냐.....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꽤나 산더미,, 아니 언덕 더미(?) 쯤 되는 크기의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그리고. 한 입 먹자마자 내적 호들갑이 폭발하며 아 이건 솔직히 우주에서 제일 맛있는 아이스크림 아니냐.....왤케 맛있지...? 여기 뭐지? ㅠㅠㅠㅠㅠ 하나 더 주문할까? 내 돼지 같아 보이려나? 고민에 고민을 반복하다가 그냥 밤에 다시 들러서 과일스무디를 사먹어 보기로 했읍니다. 


수크레는 뭔데 다 맛있죠. 뭐든 여기만 오면 다 맛있어지냐. 플랜 C의 시작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다시 발길 가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수크레의 Centro Historico는 워낙에 작고 잘 정돈되어 있어서, 소문난 길치인 나조차도 길을 잃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발에 나를 맡기고 걸어다니다 보니 도착한 곳은 결국 여기. 수크레에서도 시장에 가고 마는구나

비 오는 일요일 저녁의 시장이란 역시나 연 가게보다 닫은 가게가 훨씬 많았고. 겨우 한 자리를 비집고 앉아 볼리비아에서 꼭 먹어보고 싶던 로컬 음식을 시켰다.



이거였는데 이름 까먹었어요 Monton 어쩌구

밥 위에 온갖 야채, 소시지, 소고기에 계란후라이까지 얹어 나오는 스까묵는 덮밥이다. 크게 맛있는 맛은 아니었지만 양이 혜자롭고....고기가 많아서 좋았네여...



배뚠뚠이가 되어 다시 중앙의 광장으로 돌아온다



물론 아까 결심했던 대로 베리 스무디도 테이크아웃 해서 돌아옴


마약 같은 더블침대에 누워서 역시나 반쯤 잠들어 있는데 (어째 하루종일 먹고 자기만 하는 것 같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갑자기 시끄러운 금관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나가보니 호텔 앞의 광장에서 자그마한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었다. 세련된 맛은 없었지만 수크레에서, 볼리비아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광경일 테니 즐겨보자 하며 한참 동안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왜였을까나 조금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혼자 잘 먹고 잘 다니는게 나의 특기라고 생각했지만.




전부 대학생들처럼 보였는데

수크레의 근현대사에서 독립 운동과 혁명의 구심점이었다는 얘기는 빼놓을 수 없고. 현재는 볼리비아 고등교육의 메카라는 선입견 (?)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무질서하고 정신없는 퍼레이드에서 자유가 철철 흘러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성당 조명은 좀 난해했네요...


수크레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끝. 소문대로 정말 퍼지기 좋은 도시였기 때문에, 계획대로라면 내일 우유니로 가야 하는데 가능할까.....나는 여길 언제 뜨게 될려나.... 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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