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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2일
투어 가는 날
왜 나는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만 되면 새벽부터 미리 잠을 깨고 난리일까. 하고 4시 반에 눈을 떠서 멍하니 생각했다
결국 잠 아닌 잠을 좀 더 자고 나서야 나갈 준비 시작. 시간이 많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씻고 짐을 다 싸고 나니 아침을 먹을 시간은 커녕 여행사까지 갈 시간도 빠듯했다. '저 아침도 못 먹고 체크아웃 할 것 같은데 빵 좀 싸 주면 안되나요....?' 하고 불쌍하게 주인에게 물어서, 한 손엔 셀카봉 한 손엔 빵봉지를 들고 해발 3400m 쿠스코의 언덕을 구르듯 뛰어 내려가야만 했다. 아 멀미 나서 죽을 것 같네요
여행사는 아르마스 광장~산 페드로 시장 사이의 거리에 있던 흔한 곳들 중 하나였다
이전 게시물에도 썼지만 이제 막 생긴 곳이었는지 (....) 전날 내가 투어를 예약하는 내내 천정을 드릴로 파고 있었던 곳이었는데. 도착해 보니 다행히 어제보다는 꼴이 좀 갖춰져 있더라. 다행....다행인 거겠지..... 콜롬비아에서 왔다는 어느 가족과 함께 초조하게 기다리자 9시에 맞춰 버스가 왔고, 다른 여행객들도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나 무사히 모라이 가는구나 ㅜㅜ
라고 생각했지만 버스는 30여분을 더 기다려 나머지 사람들을 태운 다음에야 출발했다
이럴 거면 천천히 아침 먹고 와도 되었을 것을.... 하며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빵과 오렌지 쥬스를 주워먹어야만 했다. 동글동글 버터가 없으니 허전
쿠스코 근교의 산골짜기들에는 '성스러운 계곡'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원래는 이 곳의 구석구석을 방문하며 하루를 모두 쓰는 '성스러운 계곡' 투어가 있지만, 내가 신청했던 모라이-살리네라스 투어는 그 중 몇 군데만 방문하는 코스였다. 슬픈 점은 이 근방의 유적지들은 전부 통합 입장권으로 묶여 있어, 하나라도 입장을 하려면 비싼 돈을 내고 통합 티켓을 사야 했다는 것...(2014년 기준)
가는 길은 전전날 마추픽추 갈 때도 느꼈지만 참 멋져서 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첫 번째로 갔던 곳은 친체로
흔한 투어 코스....바로 기념품 파는 코스였지만
친체로는 성스러운 계곡의 잉카 마을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무려 해발 3800미터! (왠지 페루 여행을 하다 보면 해발고도에 집착하게 됨) 독특한 종류의 감자를 재배하며, 특유의 천연 염색 기법으로 유명하다고...이날 투어의 가이드였던 엘리아나가 따라라라 따라라 하는 스페인어로, 그리고 조금은 덜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 둘을 합쳐야만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미라클..
다같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려 염색장으로 향했다. 실제로는 관광객들을 위한 세트장에 가까웠겠지만
주시는 코카차도 한 잔씩 받아 들었다. 고산 적응을 위한 것이라고 (그치만 저는 이미 소로체 약쟁이인걸요...전날부터 끊기로 다짐했는데 사실 이날 아침에 또 먹었어....)
마시면서 천연 염색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업을 해 오신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는지는 몰라도 원주민 아주머니의 영어가 놀랍도록 유창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저 하얀 뿌리 같은 것들을 갈아서
염료와 섞은 뒤
담그면 염색이 짜잔 (잠깐 kimchi가 거기서 왜 나와요)
짜는 것도 보여주시고
본격 기념품 구경의 시작..
쿠스코 시내에서 보던 것들보다 더 예쁘고 질도 좋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을까
뭐 어쨌든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웠던 염색 공방이었읍니다
나름 맘에 쏙 들었던 장갑과 팔찌들을 득템
2019년에 이 글을 다시 쓰는....지금.....팔찌들은 다 잃어버렸고 장갑만 남았다 아 팔찌 정말ㅠㅠㅠㅠ예뻤는데 저걸 어디서 다시 사냐고오
그렇게 각자의 쇼핑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타고 두 번째 목적지인 모라이로 달렸다.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디좁은 길을 지나면서도 운전에 흐트러짐이 없었던 버스 기사님이 인상적이었다. 페루에서는 다들 슈퍼 드라이버가 될 수밖에 없나봐...중간중간 작은 마을들도 몇 개씩이나 통과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커다란 관광버스가 이제는 익숙한지, 원주민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은 벽에 붙어서 우리 버스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쿠스코 근교에서 많이 봤던 그림인데 무슨 의미일지
와 그리고 드디어 모라이에 도착했읍니다 지도를 보니 주변에 놀랍도록 아무 것도 없네예
잉카 사람들의 계단식 경지이자 농업 연구소였다는 이 곳 모라이에 들어가려면, 예의 그 '유적 통합 입장권'을 사야만 했다
하지만 김귤희는 오늘 밤에 쿠스코를 떠야만 했고. 오직 모라이만을 위해 저 입장권을 사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가격은 무려....당시 한화로 26000원....
물론 돈 낼 생각으로 온 것이었지만 ㅋㅋㅋㅋ 막상 매표소 앞에 서서 70솔이라는 가격을 보니 손에 땀이 나던 와중에, 같이 투어를 하던 페루 아주머니가 고민하는 나를 한사코 말리며 '모라이에 들어가 봤자 그냥 똥글뱅이들 밖에 없으니 가지 말아라' 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치만 세뇨라,, 제가 언제 또 페루에 와서 그 똥글뱅이들을 보겠어요,,, 결국 돈을 내고 망할 놈의 입장권을 샀다.
어쩐지 아쉬운 맘에 매표소 언니와 가격이라도 좀 쇼부를 보려 했지만 진상같아서 그만둠. 옆에서 어떻게 뭘 같이 해 보려던 페루 아주머니도 함께 안타까워 해주셔서 뭔가 웃겼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모라이로 들어간다.
◎
다 같이 위에서 설명을 듣고 아래로 쫑쫑 내려간다.
남미 여행 하며 수많은 투어들을 했었는데, 그 중 처음 했던 게 이 투어였던지라ㅋㅋㅋ 다들 모여 설명을 듣는다는 상황만으로도 재미있었던 나......마치 유치원 때 다 같이 소풍 온 기분..
모아이도 모아이지만 주변 풍경도 WOW임미다
내부에는 크기가 조금씩 다른 원형 경작지들이 있었다. 사진은 그 중에서도 좀 작았던 것
앞의 친구들 따라가는 중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한(?) 모라이까지 내려왔다
저 가운데의 네모들은 감자 저장을 위한 곳이었다고 함
꽃청춘에서는 다들 동그라미 아래까지 내려가던데 이 때는 그러지 못했다. 보수중이었다고 함
실제로도 풀들이 듬성듬성 나 있고 유적 자체가 많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ㅜㅠ 관광객들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이 때가 우기어서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신기했던 건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갈수록 공기가 따뜻해졌다는 것. 와닿는 바람의 양도 훨씬 줄어드는 걸 느꼈다
이런 방법으로 비슷한 고도에서도 여러 종류의 작물을 경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똑같은 사진이 9879185개네요..
해맑았던 5년 전의 나
아무튼...정말 이게 (동글뱅이들과 네모난 감자 저장소 그리고 주변의 병풍같은 산들) 전부이지만
오기 전 상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컸고, 산책하며 구경하기도 좋았어서 만족....하였었다...70솔에 대한 정신승리였나...
다시 위로 올라와서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담아본 M.O.R.A.Y.★
컴퓨터 배경화면 삼고 싶네
이어서 살리네라스로 출발한다. 나중에 또 쿠스코에 와서, 투어가 아니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면 살리네라스만 콕 집어서 다시 가 보고 싶을 만큼 좋았던 곳..투비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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