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계속해서 2014년 12월 21일



전망대에서 내려오며 왜인지 굉장한 피곤함을 느꼈다. 찾지도 못하는 길을 너무 찾으려 애썼기 때문인가....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의 중요 일정인 기념품 쇼핑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웨터 신발 가디건 야마인형! 스웨터 신발 가디건 야마인형! 하며 살 목록을 마음속으로 힘차게 되뇌이며(쓸 데 없는거 사지 않기 위한 나의 필사적 노력....) 일단 아무 가게에나 무작정 들어갔다. 




가게 사진은 없군 근데 이 골목 근처였어염


암튼 당당히 들어갔지만 나는 갱장히 긴장하고 있었다. 당시 보던 꽃청춘에서는 희열옵빠가 강력한 미남계를 써서 가격을 훅 깎는 데에 성공했지만 저는 미남이 아닌걸요....? 일단 알파카 가디건 하나와 니트 하나를 고르고는 '호갱이 되지 않겠어!!!' 하며 단호박처럼 내가 원하는 가격을 말했다. 어인 일인지 아주머니는 바로 OK를 하셨고 가격 타협에 성공했...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시.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또 설득하여 머플러를 하나 더 사게 만들었다. (아니 신발 산다며



영혼까지 털린 후 나온 골목의 풍경


*

다음 사냥감은 야마 혹은 알파카 인형이다!!!! 꽤나 여러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모양인지, 생긴 게 제각각이고 그중에 예쁜 아가들로 찾느라고 고생 쫌 했다 흑흑



마침내 발견한 귀여운 알파카 친구들 앞에서.... 간절함을 표출하며 '저 얘네 사러 쿠스코까지 왔는데 10솔에 해주면 안될까여 ◕̀◡◕́ 를 시전하여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10솔에 인형 하나 + 털모자 하나를 살 수 있었다. 꺄앙아아아악 이때 느꼈던 나의 기쁨 말로 다 못핼 거야ㅠㅠㅜ 여러 개 사오고 싶었는데 남은 여행도 길고 캐리어 자리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로 만족


다음날 모라이 갈 때 데려가려 했는데 까먹었다. 까먹은 게 잘한 일일지도 몰라 가서 흙먼지라도 묻혀 왔으면 대성통곡 각이었음



정겨운 페루 인형들. 멕시코의 애나벨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조금 더 조잡하고 뭐랄까...좀 더 밤에 잘 걸어다닐 것처럼 생겼다...


가게를 나와 유유히 걷다가 사람들이 서너명 모여 있는 벽을 발견했다. 아 저기에 그 유명한 12각돌이 있겠구나 싶었다. 마치 '이집트에 가면 이집트 문명이 남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어요!' 처럼, '쿠스코에 가면 잉카 문명이 남긴 마추픽추와 12각돌이 있어요!' 의 느낌이랄까. 안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존재



근데 실제로 보면 뭐 그냥 돌이랍니다 밋밋한 감상 죄송

그 와중에 모든 돌들이 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서 뭐가 12각돌인지 찾지 못해서 주변 상인분들에게 물어봐야만 했던 ㄴ ㅏ...


*

살 것도 볼 것도 다 끝냈겠다. 이제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유유히 돌아갈 시간. 쿠스코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하루 넘 좋아 




역시나 또 광장 한켠에서 감탄하고 있다가 경찰 아저씨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너무 맘에 들게 찍어주셨다,,,꜀( ˊ̠˂˃ˋ̠ )꜆ 그라씨아쓰



그림 같은 고산지대의 구름



파차쿠텍 동상도 눈에 띈다. 생각보다 소박한 크기




꾸역꾸역 파노라마로 담아보는 내 사랑 아르마스 광장



싸우지들 마세욧


*

한가롭게 광장을 거닐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은 아아아 참 나 내일 모라이 가야지.... 오늘으 흥정은 끝나지 않았다. 참 뚜벅이로 지구 반대편에서 여행하는것도 졸라게 피곤하구나 싶었지만. 일단 삐끼분들아 내게 말을 걸어줘~~~~~ 라는 포스로 여행사들이 밀집한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어떤 직원 언니분과의 대화 후 내가 끌려간(?) 여행사 건물은 이제 막 오픈하려는 곳인지,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인 아저씨가 전등을 갈며 내게 이것 저것 설명을 해주시는 걸 멍하니 듣고 있자니. 천장에서 먼지가 우수수수 떨어져 나와 다른 직원들의 머리 위로 쌓였다. 뭐지 나 여기서 투어 신청해도 되냐....그치만 왠지 의자에 앉아버린 이상 나갈 수가 없었다. 30솔이던 가격을 25솔로 살짝 깎고(이렇게 쿨하게 ok를 해주실때면 항상 아아아 더 낮게 불러 볼걸 싶다) 어쨌든 투어 신청을 완료하였다. 제발 내일 무사히 다녀올 수 있기를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었다.




흥정 끝내고 터덜터덜 나온 길거리. 이분 너무 멋지게 연주 잘 해주셔서 동전이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아차차 돈 없는 내 신세


시내에서 밍기적거리는 하루는 내 예상보다 길었고, 오후 시간이 좀 떠서 숙소로 돌아왔다.



초면이지만 사랑해ㅠㅠㅠㅠㅜㅠ윽 진짜 넘 뿌듯한거 아니냐 ㅠㅠ 남미 여행의 목표 중 하나를 이루었다...와라즈에서 E양이 보여준 거 보고 진짜 한 눈에 반해서 꼭!! 모자 있는 걸로 사야지!!!! 했는데 ㅠㅠㅠ 너무죠아ㅠㅠㅠㅠ



사온 주전부리들 알차게 주워먹기


그렇게 한참 동안 알파카 인형의 자태를 감상하고 와이파이의 축복을 받으며 밀린 커뮤니티 눈팅까지 하며 한두 시간을 뒹굴거렸다. 나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배가 고프니 다 기어나가게 되어 있더라. 하루 종일 입고 다니던 원피스를 벗고 좀 전에 산 알파카 스웨터를 입었다. (어쩐지 페루에 와서 알파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음 현지화를 잘 하고 있구먼 하고 생각했다. 왠지 가벼워지는 발놀림은 덤



끼양 따뜻해


어디로 가볼까 하다가 아까 점심을 먹었던 산 페드로 시장으로 가 보았으나 밤에는 영업을 안 하는 모양이었다




엄마를 기다리는지는 몰라도 어째서 이렇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거니 ㅠㅠ 귀여웡 ㅠㅠ




시장 옆의 San Francisco 광장. 밤낮으로 현지인들이 바글바글 모여 늘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다 어디선가 향긋한 불의 향기(...)를 맡고 김귤희는 뭔가를 사먹어 보게 되는데



바로바로바로 안티쿠초입니다. 소 심장구이 꼬치인데 당시의 나는 소 특수부위라면 입에도 못 대는 사람이었건만 뭔 정신으로 이걸 사먹었었는지 모르겠다. 암튼 쫄깃하고 간도 적당하고 맛도 그냥 소고기 맛이잖아요??!!!! 세상에??!!! 너무너무 맛있었다. 내일 또 머거야지~~~하고 생각했지만 이날 이후로 나는 안티쿠쵸쟝을 만나지 못했어...아레키파나 푸노에서는 못 찾았다..


다 먹고 난 꼬챙이는 왠지 흉기가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꾸만 놀라게 했고. 조용히 휴지통을 찾아 버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결국 또 아르마스 광장 가는 길 룰룰루




해가 진 아르마스 광장. 온통 오렌지색 불빛으로 물들어서 따스한 분위기였다. 신나서 폴짝폴짝 뛰다가 한국 분이랑 눈 마주쳤는데 왠지 부끄러워서 외국인인 척 함..



너 오늘부터 내 도시 할래....? 응 싫다고....? (새초롬)



가운데 보이는 것은 쿠스코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라는 예수상이다. 밤이 되면 번쩍번쩍 빛나서 이렇게 시내에서도 올려다 볼 수 있다



투머치로 신난 나...





역시나 성탄절이 가까워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아름다운 밤이여라

광장을 빙빙 돌면서 야경 사진이나 찍다가, 대성당 앞 계단에 가서 앉아 있어야지...하며 그곳으로 갔다



밤이면 댕댕이들의 쉼터가 되는 모양


아무 생각 없이 그 무리 안으로 들어가서 제일 작은 멍멍이의 정수리를 쓰다듬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개들이 나를 둘러싸더니 텁! 텁! 하며 앞발 올리기를 시전하는 것이었다. 아닠ㅋㅋㅋㅋㅋ잠깐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한테 아직도 안티쿠쵸 냄새 나냐고 이러지 말자 우리 응???? 그렇게 남미에 와서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강도가 아니라 개에게...) 꺅꺅거리고 있으니 어느 외국인 무리가 그런 나의 사진을 찍었다. 아 왜 찍혀도 이따위 사진을ㅋㅋㅋㅋㅋㅋㅋㅋ후우...겨우 빠져나와 옆으로 걸으니 이번에는 일렬로 나를 졸졸 따라와서 졸지에 피리 부는 여행객이 되었다...



고마녹만고만고만따라와



다행히 앉아 있던 다른 관광객들에게 흩어지는 댕댕이들


*

나 근데 저녁 먹으러 왔는데 아직 식당 근처도 못 갔잖아..


배가 더 고파진 상태로, 싼 식당을 찾아 쿠스코의 언덕들을 배회하다가, 이번에는 잠시 길을 잃고 말았다. 분명 낮에는 내 집처럼 헤매고 다니던 길이었다만? 밤에는 그 골목이 그 골목으로 보일 뿐인 거싱에요. 더군다나 페루에서는 어쩐지 구글맵이 GPS로도 작동하지 않았고 (이 때의 나는 유심칩 없이 와이파이만 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저퀄 뇌비게이션도 좀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고민하며 두리번거리다가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침착히 따라가니 다시 큰 길이 나오더라. 생존의 기술을 많이 터득하는 페루 여행입니다...

(웬만하면 애초부터 길을 잃지 않는 게 좋겠지만 ^_ㅠ 생각을 하고 발을 내딛는다던가 뭐 그런...)



그 와중에도 쿠스코의 야경은 예쁠 뿐



헤매다가 나온 큰 길


이제는 기력이 다 하여 값싼 식당을 찾아다닐 힘도 없었다. 그냥 졸라게 단 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리하여 가장 먼저 보이던 카페에 힘차게 들어가 케잌과 커피를 시켰다. 카페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네...거의 <카페 쿠스코> 급으로 핍진한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가




케잌도 케잌이고 아메리카노가....기대하지도 않았던 이 아메리카노가 너무나 멋진 맛과 향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감동했다

쿠스코에서의 가성비란 위대해 ( ˃⍨˂̥̥ )


*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하며 챱챱 먹고 있을 와중에. 내 맞은편 탁자에 어느 중년의 외국 남성이 앉았다.

처음에는 각자의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라 나의 시야 밖에 있었던 이 분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건 'LG 휴대폰은 쓰기 괜찮냐' 라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예? 이 타이밍에 두유 노우 엘지를 외국인이 외친다고? 당시 G2레기를 쓰던 나는 왜인지 이때다 싶어(..?) 이 휴대폰의 비루함을 어필하며 '샘숭!!! 삼성!! 샘숭을 사세요!!!' 라고 대답하였고.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왜 여행을 하냐' '여행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류의 여행자 스몰토크를 하다가, 이분이 라틴아메리카를 연구하시는 브라질 출신 지질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지질학 조사만 하시다가 사회과학 쪽에도 관심이 생겨서 리서치 팀을 새로 꾸렸다....뭐 이런 얘기들을 들으며. 당시 라틴아메리카를 부전공으로 배우던 김귤희는 무척 놀랐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한참 동안 이 교수님과 즐겁게 토론을 하다가 (어쩐지 뒤로 갈수록 대학원 면접 보는 학부생 느낌이 되었지만), 혹시 졸업하고 같이 연구하는 쪽에 관심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메일과 이름이 적힌 종이도 받고... 교수님은 떠나셨지만 이 뜻밖의 만남에 너무 놀랐던 나는 여전히 텐션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남은 케잌을 싹싹 긁어먹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5년 뒤 현재 김귤희는 퇴사 퇴사 노래를 부르는 직장인 나부랭이가 되엇읍니다. 교수님 잘 지내시나요)

(아 이 만남도 만남이었는데, 카페가 정말 좋아서 이후 남미여행 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전부 추천을 하고 다녔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카페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니 내 기억력 원망스러워)


*

시간은 어느 덧 아홉시였고. 쫄보 김귤희가 이 시간까지 혼자 밖을 나돌아다니고 있을 줄은....나도 몰랐고....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숙소까지 어떻게 가는지도 난망한 상태였건만. 껄렁한 사람들이 자꾸만 나에게 인사까지 하는 것이었다. 인사하지 마세요 저 무서우니까요 ㅠㅠ 아는 척 하지 말아달라고 ㅠㅠ 하고 속으로 울며, 일단 직진을 하니 익숙한 산 페드로 시장이 나왔다. 여전히 가로등 불빛이 환했던 반가운 곳...따흑...여기서부터는 가는 길도 외우고 있어서 두 배로 다행이었다. 마음이 놓인 채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번에는 그만



삐까로네스를 발견해 버렸네요. 멕시코에 있을 때부터 먹어보고 싶었던 페루의 군것질거리였다. 

4개에 2솔을 내고 접시 한 가득을 받아 기분이 무척 좋아졌읍니다


언제 밤의 쿠스코를 무서워했느냐는 듯 카메라도 당당히 꺼내 사진까지 찍고. 다시 가방에 고이 넣고는 숙소로 가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어둡고 좁고 사람이라고는 없는 길이었지만 삐까로네스를 손에 들고 있으니 희한하게도 무섭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먹이...먹이란 내게 뭘까...번뇌하며 열심히 손에 기름과 꿀을 묻혀가며 먹었다. 여기는 졸라 내 멋대로 지내는 쿠스코니까 (?) 손이 좀 더러워진들 뭐 어쩌겠니


잊지 않고 세탁소에서 빨래도 잘 찾아서 호스텔까지 무사 도착


열두시 반에 느긋하게 시작한 하루가 이렇게 길 줄이야...여기는 뭐 하는 곳이며 왜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하며 쿰쿰한 이불 냄새를 맡고 있자니. 한국 분들 두 분이 도미토리 안으로 들어왔다. 소소한 얘기들을 좀 더 나누다가 이날은 결국 꽤 늦게 잠이 들었다.

반응형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