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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2일
드디어 두 자리 째로 접어드는 여행일수. 앞으로 가야 할 곳들이 더 많지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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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답지 않게 부지런했던 여행 초반부와는 달리 이맘때의 나는 매일이 늦잠이었다. 모처럼 8시 반까지 푹 자고 일어났다. 샤워기 수압은 여전히 말도 안 되게 강하고, 너무 사치스러운 거 아닌가 괜시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한참 샤워를 하고 나서야 언니와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침도 자리로 가져다 주시고 꽤나 맛있기까지 했던 내 기준 가성비 짱짱 호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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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찌 보면 카리브해 여행의 하이라이트랄까. 칸쿤 해변에 가는 날이다.
뚤룸과 플라야 델 까르멘 바다에 발을 디딘 건 칸쿤에 오기 위해서였지만, 며칠째 카리브해를 보고 있으니 그놈이 그놈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보통 사람이라면 함부로 칸쿤 해변에 발을 디딜 수도 없는 것. 대형 리조트들과 호텔들이 해변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기 때문에 칸쿤 해변은 호텔존(Zona Hotelera)으로 불리며, 제대로 된 바다 구경을 하려면 호텔에 투숙해야 한다. 하지만 타지에서 교환학생 생활 하느라 생활비를 거덜낸 대학교 3학년 학부생이 호텔에 묵을 돈은 물론 없구요....그리하여 나와 같이 시내에 머무는 안타까운(ㅠㅠ) 배낭여행자들은 보통 호텔과 호텔 사이의 개방된 공간인 퍼블릭 비치를 이용한다.
이쯤에서 보는 호텔존 지도. 어떻게 저렇게 생긴 거죠???? 지리학도의 자문이 시급하다 아니 증말로 신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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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언니와 버스를 타고 호텔존 쪽으로 향했다. 칸쿤의 버스비는 무려 1인당 10페소 (2014년 기준) 이었고 이 돈이면 께레따로에서 버스를 3번 탈 가격이었기에 이 나쁜 동네 ㅠㅠㅠ 하면서 출발
비싼 만큼 어쩐지 화려했던 칸쿤 시내버스 내부. 착한 물고기는 남의 아버지 안부를 함부로 묻지 말도록 합씨다...
그렇게 20여분을 달리니 호수가 나왔다. 본 것 중에 가장 넓은 석호! 그치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겠지 ʘ̥_ʘ 너도 점점 좁아지고 있지..?
호수의 왼편에는 하늘까지 닿을 것 같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니 뒷편에 바다가 있긴 한 거냐고
네 바다가 있긴 있더군요
우리가 간 퍼블릭 비치의 이름은 Playa Delfines. 이름도 예쁜 돌고래 해변이다. 호텔존 구역에서도 꽤나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내리자마자 언니랑 둘이 눈 저만치 튀어나옴
아니 카리브해가 그놈이 그놈이라고 말했던 사람 누구? 칸쿤의 해변은 과연 칸쿤의 해변이었던 것이다!!!!
다른 동네보다 채도가 100%는 더 높은 것 같았던 물 색깔과.. 저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이라니. 플라야 델 까르멘에서 딱 2시간 걸려 온 동네인데 물빛은 이렇게 틀리다니ㅠㅠ 하긴 자그마한 제주도도 동서남북 바다색깔이 다 다른데 멕시코 땅덩어리는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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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전망대에서부터 넋을 놓고 칸쿤바다를 보며 흐느적거리는 (퀄리티 무엇....) 멕시코산 셀카봉을 붙들고 언니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호주에서 오셨다는 노부부 커플이 계셨다. 이민을 오신 분들인지 낯선 영어 액센트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호주 액센트까지 합쳐져 그야말로 혼란한 말투 (아니 내 영어같자너...), 그리고 우리처럼 이 쪼그만 퍼블릭 비치에 다른 사람들과 우글우글 모여 칸쿤을 즐긴다는 동질감까지. 이들의 존재는 왠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의 셀카봉을 신기하다는 듯 한참 바라보시던 할아버지는 수줍게 그 셀카봉으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셨고. 그렇게 우리는 돌고래 해변 전망대에서 뜻밖의 월드 와이드 셀피 타임을 가졌다 ㅋㅋㅋㅋㅋ 아 그런데 할머니가 사진을 안 보내주고 가셨어 흑흑..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돌고래 해변의 깃발
전망대에서 한참을 사진 찍고 놀다가 간신히 아래로 내려왔다. 가까이서 보니 더 멋진 바다
해초 천국이긴 하지만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바다일테니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렇구말구 ㅜㅠ
실제로 칸쿤 바다는 바라만 봐도 눈이 부셨다. 칸쿤 갓물주님들 이런 틈새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이곳의 파도는 너무 거셌고 나 같은 사람은 빠져 죽기 아주 좋으므로 하반신 이상은 담그지 않는 거시 조씀니다
오늘도 갈매기 구경
다들 파라솔 하나씩 잡고 누워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이용료도 없다! 공짜!! 우리가 준비할 건 오직 비치타월 한 장 뿐이었다.
비록 플라야 델 까르멘처럼 주변에 이용하기 편한 레스토랑과 바가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오히려 진짜 아무것도 없어서 난감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진짜 '동네 바닷가'에 온 느낌? 근사한 파라솔이나 선베드를 돈 받고 빌려주는 곳이 근방에 있지만 그걸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멕시코 사람들과 배낭여행자 무리들이 가벼운 짐으로 버스를 타고 와, 이미 설치되어 있는 허름한 파라솔 아래 몸을 누이고 잠시 즐기고 갈 수 있는 그런 해변이 바로 이곳 Playa delfine였다.
그리하여 우리도 하나 잡아서 드러누워 봄
살에 바로 닿는 모래가 시원해서 선배드에 눕는 것보다 기분은 더 좋았다
진짜 멕시코 사람들의 칸쿤, 퍼블릭 비치!
바다에서 패러글라이딩 하는 로망은 언제쯤요..
해초가 많기도 하고 하나같이 억세서 다리에 좀 아프게 감기는 게 아쉬운 일이었따 흑
바로 옆 파라솔에서는 누군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드러누워서 <칠레의 모든 것들>을 의무감에 읽다가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죽은 듯이 자고 나니 해는 조금 더 기울어 있었고, 내 오른팔과 오른다리가 햇볕에 빨갛게 타 있는 걸 발견....젠장....낑낑대며 비치타월을 옆으로 옮기고 다시 눕는다. 시간이 어찌 가는지도 모르겠는 카리브해의 오후.
오후 3시가 되면 뭔 알람이라도 맞춰놨는지 먹구름이 무섭게 몰려온다. 겨울의 카리브해는 참 일관성 있는 날씨를 보여주었다.
갑자기 갈매기들에게 교주마냥 일용할 양식을 주시던 우쿨렐레 아저씨
먹을거 다 받아먹고 떠나는 냉정한 갈매기쓰
훠이훠이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아서 퇴갤각을 세워본다
인증샷 포인뜨 발견
이름만큼이나 예뻤던 돌고래 해변 안녕
우리 밥도 안 먹고 해변에 3시 넘게까지 드러누워 있던 거 실화였냐
늦어버린 점심은 당시 남미사랑 카페에서 봤던 어느 라멘집에 가서 먹기로 했다. Playa delfine에서도 꽤나 멀어서 버스를 타고 또 한참 위로 올라왔다.
라멘이라니! 한자라니! 일본어라니! 아니 이게 뭐라고 반가운 것이여ㅠㅠㅠ
들어가면 우리한테 일본어 하시는 거 아니냐 깔깔 하며 들어갔는데 역시나 일본어로 쓰인 메뉴판을 먼저 주시는 아주머니...
세개를 시켜 다 먹었읍니다..
거의 몇개월 만에 그나마 제대로 된 일식을 먹은 거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얼른 한국에 가서 단골 라멘집들을 하나하나 죠지고 싶은 마음 뿐이었음...
다 먹고 호텔로 돌아와서
씻고 뒹굴거리다 보니 호텔 창밖으로 해가 졌다. 마지막까지 뜻밖의 선물을 주는 이곳
늘 그렇듯 해 지는 건 순식간이다
이제 남미 가면 호스텔만 전전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 호텔 투숙 경험이 더욱 애틋했을지도 (엉엉)
*
밤에는 론리플래닛 식으로 말하자면 나이트라이프(으앜ㅋㅋㅋ)를 즐기려고 단장을 했으나 언니와 내가 피곤에 쩔어 번갈아 잠들었던 탓에 우리는 나가지 못했다...오 미친 나 내일 페루 가네 어쩌지.......하며 다시 깊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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