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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1


인생 첫 유럽여행이자 사회의 노예가 되기 전 마지막 여행이었던 김귤희의 스페인 여행기를 시작하겠다 뚠뚠



여행 준비는 마통을 뚫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이거슨 그야말로 인생 최초로 빚을 내고 떠나는 여행인지라 ㅠㅅㅠ 

정상인이라면 심적 압박감에 최대한 검소한 여행 스케쥴을 짰겠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 생각이 없었고. 엣헴 미래의 직장인이 호스텔에서만 20박을 할 수는 없지!!!!! 하며 중간중간 호텔 싱글룸을 예약하는 패기까지 보이고 말았다. 


(물론 중간중간 호스텔에서도 새우잠을 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숙박비는 하루에 2.3만원꼴로 꽤나 괜찮았다는 것)


그렇게 때로는 사치스럽고 때로는 그지같은(.....) 스페인 여행 계획표 완성. 9월부터 11월까지 대책없이 긴 공백기를 이용해 하루 종일 계획을 짜고 스페인 역사/정치/경제/문화/사회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으므로, 여행가이드 못지 않은 프로페셔널한 계획표가 완성되었다. 14년도의 허접한 남미 여행 계획과는 차원이 틀리다는 생각에 한껏 뿌듯해하며 출발 전날을 맞았지만.....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짐싸기 스킬은 바닥. 겨울옷 압축팩 쥬거버린다 진짜...새벽 3시까지 24인치 캐리어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잠들었다.





어쨌거나 무사히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면세품 수령하러 인도장 갔는데....로마에서 공항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면 액체류는 뺏길 수도 있다고 해서 뜻밖의 걱정을 떠안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내 파데 내 수분크림 못잃는다 이놈들아ㅠㅠㅠ





내가 탈 비행기는 이탈리아 국적기인 알이탈리아. 언젠간 나도 코리안 에어 타고 유럽 갈 수 있겠지요? ㅠㅠ 그렇다고 해줘ㅠㅠ





출발 직전. 날씨는 그야말로 완벽해서 하필 이런 날 한국을 떠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리고 아조 재밌는 경험을 함.

보통 비행기 옆자리 사람과 얘기를 할 일이 전혀 없지만, 이 날은 옆자리 사람과 8시간 넘게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해외 영업 일을 한다는 어떤 과장님이셨고......대화가 즐겁고 또 끊이지 않아서 나름 즐겁게 비행 시간의 절반을 보낼 수 있었음.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이나 솔직하고 당당하게 할 수 있어서 좋으며, 나는 이런 류의 대화를 하는 내 모습을 매우 사랑하므로, (수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아마 할머니가 될 때까지 주기적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고 집으로 돌아오고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 넘나 재밌긴 했는데. 새벽 3시까지 짐만 싸다가 새우잠 자고 온 내겐 넘 가혹한 시간이었고ㅠㅠㅠㅠ  한국 가서 반가웠다고 이메일 드려야지 했는데 기껏 받아온 명함을 잃어버렸읍니다.





떠들며 가다 보니 저녁 메뉴가 나옴. 원래 기내식에는 기대를 안 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만 이 항공사의 기내식 수듄이란 정말이지....(말잇못)





다만 처음 보는 이태리 맥주가 나와 신기했다는 것이다.

칠레-멕시코 비행기 실신 사건(.....) 이후 기내에선 절대 술을 먹지 않기로 다짐했으므로. 로마 도착해서 짐 풀고 바로 마셔야지 생각함.


중반 쯤에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줬는데 그게 이 비행기에서 먹은 것들 중 총체적으로 제일 나았으며,,,,옆자리의 과장님은 하나를 더 받아와 드셨다.




쫌 자니 또 아침 줌. 한식 메뉴는 이렇게 생겼다. 뭐가 되었든 이탈리아식보다는 나았던 것으로 기억



그렇게 2년만의 장거리 비행을 마치고 녹초가 된 채로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하였다. 시간은 저녁 7시 반.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는 다음날 오전이었기에 로마 시내 구경도 좀 할겸, 테르미니 역 근처에 호텔을 잡아 놓았었다. 막상 도착하니 졸라 나가기 귀찮았지만 환불불가로 예약한 거라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걸어나옴....



로마엔 비가 오고 있었고 오래된 돌바닥들은 전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공항버스에서는 어쩐지 익숙한 냄새가 나서, 순간 이 버스가 밤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를 집으로 실어나르는 버스인지 아닌지 잠시 고민이 되기도 했다. 어째서 전세계 공항버스에서는 모두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인지 8ㅅ8


창밖으로 보이는 로마의 오렌지빛 조명과 무거운 건물들을 멍하니 보며 지금까지 봐왔던 남미의 '유럽식' 건물들을 떠올리고 있자니 금방 떼르미니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텔은 그야말로 역에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의 코앞에 위치한 훈늉한 숙소였다.



1박에 10만원 조금 넘는 곳이지만 특가로 거의 반값에 예약 예이이



어쩐지 영어보다 스페인어로 말할 때 내 말을 더 잘 알아들어 주시던 매니저 할아부지가 안내해주신 나의 소듕한 1인실 ☆


(체크인 하는 짧은 5분 사이에 얼마나 윙크를 많이 하시던지 혹시 눈에 경련이 일어나고 계신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그치만 소문대로 참 친절한 이태리 사람들!)



그리고 소문대로 유럽의 엘리베이터들은 참으로 갑갑하더라. 나같은 애야 두명도 타겠지만 빌 브라이슨 같은 사람이 왔다면.......절레절레.......왜 그렇게 여행기 내내 유럽 엘리베이터를 갖고 넘어졌는지 알 것만 같다.


다음날 오전 비행기를 타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했지만 그래도 로마까지 왔는데! 하며 밖으로 나가보기로 한다. 현재 시각 오후 9시.




호텔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숱한 카톨릭 성당들을 봐왔지만 이런 느낌은 하지메떼야..




원래의 목표는 걸어서 20분 거리인 콜로세움까지 다녀오는 것이었으나. 일요일 밤의 로마 밤거리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떼르미니 역 근처가 그리 안전한 동네도 아니고....내게 뭐라고 중얼거리시는 노숙자분 외에는 걸어다니는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극강의 고요함. 그 와중에 골목마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은 너무도 휘황찬란해서, 어쩐지 나 혼자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공간에 뚝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쨌냐.......무서웠다는 것....그냥 마조레 대성전이나 한 바퀴 둘러보고 호텔 할아버지의 윙크세례를 받으며 내 방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굳게 닫힌 성당의 문과 위로 보이는 성화. 푸른 염료로 칠해진 형태들이 지붕의 돔 색깔과 찰떡같이 잘 어울리더라



본디 뼛속까지 무교인지라 전지전능한 존재가 이 세상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도, 그에 감화를 받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동시에 뼛속까지 나약하고 이기적인 사람인지라,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어딘가에선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커다란 이국의 성당 앞에 서 있다 보면 세상 모든 구원으로의 욕망들과, 그들을 살펴줄 찬란한 무언가가 여기 한데 모여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매번 들곤 한다. 목을 한껏 뒤로 꺾어야만 보이는 푸른색 지붕과 돔, 그리고 이들을 지탱하는 커다란 기둥을 바라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최소한 여기선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불신자조차도.



그건 그렇고 이탈리아어 넘 신기..... 표지판 예쁨....

나중에 바르셀로나 가서 느낀거지만 까딸란이나 이탈리아어나 알아듣겠으면서도 못 알아듣겠는 느낌(?!!!??)은 매한가지더라



일요일 밤은 스쿠터 매장도 휴업중



그렇게 대성전 근처를 한두바퀴 돌다가 잡생각들을 가득 떠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로마의 수많은 성당들 중 하나일텐데. 중남미에선 볼 수 없었던 저 동그랗고 화려한 창문 장식이 넘니 예뻐서 역시 유럽땅을 밟아보기 잘 하였구나 싶었다(?!)



감옥같은 에레베타로 마무리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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