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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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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내내 잘 쉬었던 푸콘을 떠나는 날


버스는 8시 출발이었기에 새벽같이 숙소를 떠나야 했다. 체크인을 할 때 잔돈이 부족해서 못 받았던 거스름돈 1000페소가 문득 떠올랐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한참 동안 벨을 눌렀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암만 그래도 7시면 일어나야 하지 않니.... 한화로 2000원이면 생수를 몇 병을 사 마시는데 이놈들이 ㅠㅠ 암튼 이역만리 칠레 땅에 못 받은 돈을 남기고야 말았다.



전전날 버스표를 사느라 미리 가 봤던 JAC 버스 터미널. 칠레에서는 pullman 말고는 타보지 않았는데, 푸콘에서 푸에르토 몬트로 가는 버스는 이 회사에서만 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시설은 2등 버스 정도



푸콘에서 푸에르토 몬트까지는 4시간 하고도 조금 더 걸렸다


지도상으로는 멀어보이지만 전체 칠레 지도로 보면 20분의 1도 안 될 짧은 거리. 전날 마트에서 사 놓았던 프링글스 스타일의 과자를 꺼내어 먹으며, 푸콘으로 올 때도 넋을 놓고 보았던 아름다운 칠레 중남부의 풍경을 한참 동안 구경한다. 버스는 푸에르토 바라스라는 이름의, 몬트보다 유명하고 조금 더 볼거리가 많은 마을에 한 번 정차했다. 맘 같아서는 배낭에 캐리어까지 짊어지고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바로 다음날 비행기 스케쥴이 있었기 때문에.. 시무룩..



도착한 몬트의 버스 터미널


*

전전 포스팅에서였나. 푸콘에서의 숙소 위치가 구글맵에 잘못 나와 있어 한참 동안 거리를 방황했었는데 푸에르토 몬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 아무튼 이 때는 아직 몰랐었고. 택시를 탈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구글맵상으로 보이는 숙소는 걸어서 20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어 보였기 때문에,, 김귤희는 캐리어를 끌고 길거리로 나오기에 이른다



항구 도시 푸에르토 몬트의 바다가 나를 반긴다


....그리고 김귤희는 1시간 뒤 메모장에 온갖 f word를 쓰며 구글맵을 욕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무려 반대 방향으로 30분이나 걷게 만들었던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열받네.... 결국 택시를 탔다. 택시 타는 게 아까워서 30분이나 걸어온건데, 심지어 알고 보니 원래 숙소 위치는 버스터미널에서 10분 거리였다. 



용서 모대.. (부들부들) 지금은 잘 나와 있어서 더 억울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나의 숙소는 맘에 쏙 드는 1인실이었다. 푸콘에서 전날 밤 급히 예약한 것 치고는 만족스러웠음. 조금 뒹굴거리며 분을 가라앉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숙소가 있던 길목. 얼핏 보면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지만 어촌 마을 특유의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푸에르토 몬트가 더없이 평-화로운 곳이었어서 그런지. 오가며 무섭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몬트에도 수국이 활짝


솔직히 말하자면 푸에르토 몬트에서 관광을 한다거나, 여타 도시처럼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유명한 여행지도 아니고, 큰 도시도 아니고. 론리플래닛을 봐도 '여기에 대해 딱히 할 말은 없다' 라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곳 푸에르토 몬트. 내가 들렀던 이유도 단지 칠레 남쪽 끝 - 푼타 아레나스 - 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파타고니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 역할을 하는 장소랄까. 여행을 하다 보면 교통은 부차적인 의미가 되고, 몬트 역시 내 여행 계획표에서는 '거쳐가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암튼 그런 생각들을 하며 앙헬모 수산시장 쪽으로 걸었다. 전날 밤에 크래커에 탄산수만 먹고 잤기 때문에 배가 고팠던 걸까

나오라는 생선 가게는 안 나오고 웬 기념품 가게들이 도로 한켠에 가득했다. 메르까도에 어서와...




지켜보고 있다 펭귄들아




예쁘고 지역색 있는 것들이 많더라


아니 근데,,푸에르토 몬트에 와서 처음으로 칠레가 여름이라는 사실을 잊고 말았는데, 바닷가라 그런지 아니면 남극에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바람이 너무도 세게 불고 온몸이 달달 떨릴 정도로 추웠다. 머리가 너무 시려웠던 탓에 가게에서 털모자를 하나 샀다. 어차피 나중에 트래킹 할 때 필요하지 않을까 하며 오늘도 충동적인 소비는 합리화해 버리기 💕



그러던 와중 마침내 수산시장의 모습이 저멀리 보이기 시작했고

아까부터 쭉 따라 걸어오던 푸에르토 몬트의 바다는 강이 되어 있었다. 밝은 청록색의, 생전 본 색깔이 없는 강이었다. 아아 아름답네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오늘도 날씨는 그저 좋았고. 모래톱에 박혀 있던 몇 개의 알록달록한 배들조차 이 풍경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어쩐지 칠레 국기 색깔이었던 작은 배



저멀리 화산이 보인다. 과연 칠레답게 곳곳에 화산들이 즐비해 있다





다른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일 수 있지만. 장엄함도 낯섬도 없는 광경이지만

야트막한 푸른 바다와 곳곳에 피어 있는 수국들, 이곳 사람들의 별거 아닌 잔잔한 일상. 몬트의 평범함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유람선치고는 작고 귀여웠던 이 배에도 사람들이 가득가득



아무튼 본격적으로 수산시장 구경 시작



수산시장이라고 해산물만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역시나 해산물이 있다 (?)



칠레식 세비체도 보았다. 시장에 갈 때마다 볼 수 있었지만 바닷가 마을에 와서 보니 느낌이 새로운걸


세비체의 본고장은 페루라고 하지만, 남미 전역에서, 심지어 멕시코에서도 맛볼 수 있다 (멕시코에서는 딱히 먹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루 세비체보다 칠레 세비체가 훨씬 맛있었다.



빨간 배를 내보이고 있는 연어들 때문에 앙헬모 시장은 온통 주황빛이었다



계단을 올라가서 2층의 식당가 쪽으로


앙헬모 수산시장에 오기 전부터 들었던 칠레 음식이 바로 '꾸란또' 였다. 푸에르토 몬트와 근방의 칠로에 섬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칠레의 해산물 음식 하면 바로 떠오르는 꾸란또! 



한 접시에 12000원 정도로 꽤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뭘 얼마나 주시려나 ☺️' 하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빵과 (남미 여행하며 질리도록 먹었던 형태의 빵이지만 먹을 때마다 행복)

내가 너무 사랑하는 토마토 샐러드 (이 역시 볼리비아 남부~칠레를 여행하며 자꾸만 맛보게 되었던 음식이었다)

그리고 에피타이저 세비체와 피스코 사워가 나왔다. 아까 세비체 한 컵 사먹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사진만 찍고 지나치길 잘 했지! 이야 근데 이걸 다 무료로 주신다굽쇼? 달달한 피스코 사워를 쭉쭉 들이키고 있자니 무언가 산더미같이 쌓인 접시 하나가 더 나왔다.



두둥


아니 이게 바로...꾸👑란👑또? 홍합에 조개에 닭에 돼지갈비에 소시지에 감자에 밀떡(?)까지... 이 손바닥보다 큰 홍합은 도대체 뭐지 이걸 홍합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그리고 저 모든 것들을 끓인 육수가 함께 나왔다. 마 여기가 강알리인교! 소주 한 병 주이소!



식사 시작


해산물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입에 들어가는 족족 천국이었고. 돼지갈비도 닭고기도 살살 녹고. 역시 칠레의 국민 음식이구나 하며 혼자서 고독하게 고로 아저씨처럼 한 접시를 비우고 있자니 좀 외롭네. 다른 여행 블로그들을 보면 양이 꽤 많다고 둘이 시켜 나눠먹으라고 했지만. 칠레에서는 벌써 며칠째 솔플 중이니 동행 만날 팔자가 아닌 걸까.... 하다 보니 어느새 한 접시를 다 먹었다.


요즘 굶고 다녀서 그런지 꾸란또 한 접시 쯤은 껌이네,, 누구랑 같이 와서 먹었으면 싸웠을듯



내 기억 속 앙헬모 시장의 모습 총집합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오늘도 벤치 아래에서 잠자는 멍멍이 구경




금방 잡은 물고기로 회 같은 걸 뜨고 계셨던 아조시

왼쪽의 갈매기를 조심하세욧



너무 추워서 갖고 있는 모든 걸 껴입고 다닌 모습이다 스타일링은 개나 줘



사진으로 보니까 평화로워 보여서 억울하다 나 정말 추웠는데



1일 1아이스크림도 포기할 수 없으니 어쨌든 사먹긴 하는데 그래도 정말 추웠다구욧



흐린 날 보기가 힘들었던 칠레에서의 매일매일


*

얼마나 지났을까나. 숙소에서 나온 게 이미 2시쯤이고 한참 시장 구경을 했으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 같았지만. 주위는 마치 한낮같았다. 처음 밖으로 나왔을 때보다 훨씬 차갑고 강해진 바닷바람으로 지금이 저녁때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무작정 동쪽으로 걷다 보니 강은 다시 바다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푸에르토 몬트는 꽤나 도시였던 모양일까 저런 고층 건물도 있고 말이다




바닷가를 따라, 몇 시간 전 캐리어를 끌고 숙소 반대 방향으로 걷느라 개고생을 했던 그 길을 쭈욱 따라 걸었다.

놀러 나온 가족들과 커플들로 꽤 붐비고 있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푸콘과는 달리 여기는 정말 사람 사는 동네 같네



어느 나라 항구를 가도 해군 제독들 흉상이 있겠지




이런 것들도 걸려있는 걸 보니 여기가 칠레판 남산공원 해운대공원입니까




그리고 어느새 눈앞에 보인 이것은 푸에르토 몬트의 랜드마크(?)인 연인상



정말 별거 없고 조악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또 이런 게 푸에르토 몬트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단 거시에요





이게 몇 개째 보이는 화산일까

지도상으로는 2~3개 정도의 화산이 푸에르토 몬트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 있을 수도 있구



물색깔이 딱 동해바다나 붓싼인데요

돌이켜보면 푸에르토 몬트처럼, 칠레 자체가 평범해 보이면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나라였던 것 같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칠레보다는 아르헨티나를 선호하는 것 같지만, (아르헨티나를 못 가본) 내게는 여전히 칠레가 페루~볼리비아보다도 마음에 깊이 남은 여행지.



그렇게 한동안 혼자 바다를 거닐며 가족 연인들의 러쉬를 마주하다 보니 어쩐지 스스로를 처량히 여기게 되었다



처량함을 이겨내기 위해 1일 2아이스크림을 하는 모습이다

내일 푸에르토 몬트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 표를 알아보기 위해 터미널에 들어왔다가 이렇게 조심성 없이 또 아이스크림을 사 버리는,,, 나란 어른,,,



어른은 역시 맥주지


아타카마에서 먹고 반해버린 쿤스트만. 다른 맛에 도전해 보았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몬트에서 보낸 짧지만 단란한 그리고 조금은 외로웠던 반나절은 이렇게 끝. 내일부터는 진짜로 파타고니아로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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