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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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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접해 있었던 아름다운 도시




나의 호스텔. 아따까마에서 (위치 빼고) 모든게 만족스러웠던 Aji Verde가 이곳에도 체인을 가지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예약했다 (๑•̀ㅁ•́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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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아저씨의 칠레 사투리에 감탄하며 숙소에 도착했다. 와!!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어요!!! (아저씨 : 껄껄껄)

도착한 시간은 이르다면 이른 오전 8시였고, 침대가 나오기까지는 조금 기다려야 했다. 비몽사몽 간에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아따까마에서는 찬물 3분, 뜨거운 물 1분, 다시 찬물 5분, 뜨거운 물 2분....의 이상한 수열로 변하는 온도 때문에 (사막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내내 두려움에 떨며 샤워를 했건만. 이곳에서는 모처럼 편안하게 핫샤워를 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젖은 머리를 툭툭 털며 정신을 놓아가고 있자니 스탭이 상냥하게도 '어서 내려가서 아침 좀 먹어!' 라고 말해 주었다. 아직 세상은 따뜻하구나....


호스텔 2층에서 보이던 풍경. 으흑흑흑 치유된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고, 어쩐지 리마에 처음 도착했을 때가 생각났다. 멕시코를 떠나 혼자 다니던 게 그저 자유롭고 좋았었지만, 그 뒤로 좋은 사람들만 만나 같이 다니다 보니 어느샌가 혼자 여행하는 방법을 다 까먹어 버렸던 건지. 오전 내내 기운이 나지 않아서 호스텔에서 빈둥거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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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뒹굴거리는 것도 잠시. 새로운 도시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보면 밀려오는,, 정체 모를 죄책감과 초조함이 있는 거 다들 알 것이다.. 때마침 체력과 정신력도 알맞게 회복되었고 흐렸던 하늘도 반짝 개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나갈 타이밍인가. 아까 스탭이 추천해 준 별보기 투어도 어디 한번 알아볼까... 하며 애써 발을 샌들에 구겨넣고는 호스텔 문을 나섰다.



반나절 만에 이렇게 하늘이 파래지다니 말이 되나요




남미에 스시집들이 많았던 건 다시 생각해 봐도 좀 신기했다




노점 구경하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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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로 매우 긴 나라 칠레. 그 중북부의 해안가에 위치한 라세레나는 여행자들에게 인지도는 좀 떨어지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명한 휴양도시이다. 왜냐. 바다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나라 해운대나 경포대 혹은 멕시코 카리브처럼 왁자지껄한 휴양지는 아니다. '라-세-레-나' 라는 도시의 이름이 주는 부드러운 느낌에 가까운 그런 곳이다. 실제로 이곳의 길거리에는 여유와 왠지 모를 기품(?)이 넘쳤다. 그동안 멕시코와 페루 볼리비아의 도심에서 손쉽게 볼 수 있던 빈곤의 그늘은 온데간데 없고, 쇼윈도로 들여다보이는 백화점 마네킹의 화려한 옷차림 혹은 길거리 노천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 혹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흰 피부와 여유로운 표정들만이 가득했다. 왠지 햇살 같았던 그런 도시. 


아아 내가 칠레에 있구나 지금, 하고 아따까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낯선 기분을 아주아주 짙게 느꼈다.



전부 최근에 지은 성당들인 것인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했다.



거리에서 팔길래 참지 못하고 하나 사먹어 봤다 흑흑 카라멜 크림 흑흑




한창 여름이었던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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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콩 나듯 있던 여행사들을 뒤져본 결과 몇 가지 투어를 발견하긴 했다.


1. 비쿠냐라는 인근의 작은 마을로 가는 별보기 투어 << Best!

2. 마찬가지로 비쿠냐에서 하는 데이 투어 (피스코 공장과 파파야 농장 등 견학.... 별로 땡기지 않아서 제외했다)

3. 근처의 작은 섬에 훔볼트 펭귄을 보러 가는 투어



여긴가 보다. 근처라기엔 좀 멀어 보이지만


펭귄이라는 말에 흥분했지만 가격이 8만원 정도로, 당시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꽤 비쌌다. 안 그래도 물가 비싼 칠레에 와서 돈을 와장창창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펭귄 보러 가는 건 포기₍o̴̶̷᷄﹏o̴̶̷̥᷅₎  오늘 밤에 할 별보기 투어만 신청하고 돌아섰다.




숙소 돌아가는 길에 점심으로 엠빠냐다...(다시 시작되었다 거지처럼 먹고 다니기)

칠레에서는 처음 사먹어 본 엠빠냐다였는데, 크기가 볼리비아의 살테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묵직했다. 그래 이래야 내 한끼 식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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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정도 쉬다가 6시 반에 우리 숙소로 픽업을 온 봉고차를 타고 드디어 투어 출발

다른 멤버들도 태우기 위해 봉고차는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았다. 바닷가의 고급 호텔들에서 두 가족이 우르르 탔다. 배낭 여행객은 나밖에 없는거냐.....정녕 이 동네에 오는 백팩커는 없냐....ㅠㅠ 기사 아저씨가 조수석에 타라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별보기 투어의 목적지는 라 세레나에서 1시간 정도 걸린다는 작은 마을 Vicuña. 뭐가 그리 피곤했는지 침까지 질질 흘리며 조수석에서 잘도 잤다. 도착하기 직전에 눈을 뜨니 우리의 차는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건 역시나 산. 그래 별을 보려면 산으로 가야지.




생전 본 적 없는 모습의 산에 감탄하며 계속해서 달린다







천문대는 비쿠냐에서도 좀 더 가야 하는 외곽에 있었지만, 입장권을 시내에서 사야 했기에 우리의 차는 마을 한 가운데에 잠시 정차했다.




아니 근데 뭐야 비쿠냐 왤케 예쁜 마을이에요


기사 아저씨가 우리의 표를 사러 간 사이 잠시 아르마스 광장 근처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작지만 그림 같이 아기자기한 동네가 바로 이곳 비쿠냐였던 것이다. 아까 여행사에서 들었던 (별거 없다고 생각해서 제껴버렸던) 데이 투어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손바닥만한 아르마스 광장을 빙 둘러 있던 노점들을 정신 놓고 구경하다가, 중남미 각국의 돌로 만들었다는 악세사리를 팔던 콜롬비아 청년에게 목걸이 두 개를 샀다. 칠레에서의 첫 소소한 지름은 아름다운 비쿠냐에서  ✺◟(∗❛ัᴗ❛ั∗)◞✺




아까 먹었던 엠빠냐다는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므로.. 레몬파이도 하나 사먹었다. 오늘의 보잘것없지만 스윗한 저녁

레몬+파이+크림 조합이 맛이 없을수가. 칠레에서 먹는 달다구리들은 늘 맛있었다.



다시 달리는 우리의 차

비쿠냐는 별 보기로 소문난 동네인지, 근처에만 4~5개의 천문대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가는 곳은 그 중 일반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곳. 암만 그래도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볼 수 있는 경험은 결코 흔한 게 아니었을 테니까! 




왠지 나무 한 그루도 없었던 연갈색 산들은 해질녘이 되자 노을 색 그대로 붉게 물들었다. 라디오에서는 때마침 호텔 캘리포니아가 흘러나왔고. 드라이버 아저씨와 환상의(?) 2중창을 하며 S자로 구불구불 절벽길을 달려 마침내 천문대가 있는 산 위에 도착.




마마유카 천문대





도착하자마자 천문대 주변 풍경에 탄성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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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두 종류(영어, 스페인어)가 있었다. 굳이 영어가 있었기에 우선 영어로 듣겠다고 하고,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분들은 전부 스페인어 투어 시간에 맞춰 들어가는 바람에 나는 혼자 쭈구리처럼 밖에 앉아 영어 가이드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안녕 여기 사는 친구니...

나 이러다 가이드 못 받는 거 아니냐. 관광객이 너무 없어도 좀 그렇구나...하고 있는 와중에, 다행히도 독일인 2명과 오스트리아인 2명이 다른 투어팀에서 와 주었고. 오늘의 영어 가이드 분도 알맞게 도착. 6-70명은 될 것 같다던 스페인어 팀에 비하면 우리 팀은 참으로 단란하기 그지 없었다. 방금 한 생각은 취소한다. 관광객이 너무 없으면 너무너무 좋네요


그리고 마마유카 천문대의 영어 가이드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남미 여행을 통틀어 최고의 가이드였다고 (우유니의 히어로 죠니보다도 더...) 감히 말해본다. 천문학을 직접 공부하셨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쉴틈없이 풀어내셨던 풍부하고 흥미로운 설명들과... 유창한 영어... 따흑

평소 별과 우주에 관심은 많지만 지식은 일천하여 슬펐는데, 거의 노트북 필기로 속기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유익했던 순간이었다. 



별보기 투어가 시작된 시간은 오후 9시 남짓이었고 해는 이미 졌지만, 남반구의 여름은 생각보다 밝아서 하늘은 아직 맨눈으로 별을 볼 만큼 캄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밤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망원경으로 관측을 했다. 별들을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는 조금 더 크게 ㅡ 대강 새끼손톱 반 정도 되는 크기로 ㅡ 관측할 수 있었다. 가이드 아저씨가 리모콘으로 별 위치를 찍어 주면, 암실 안에서 위잉- 소리를 내며 천체망원경이 돌아가며 좌표를 잡았고. 셋팅이 완료되면 한 명씩 망원경에 한쪽 눈을 대고 별을 봤다.



금성은 말 그대로 무지개빛이었고, 화성은 불타는 듯 했고. 오래된 별이라는 베텔게우스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여러 갈래로 반짝이며 환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던 시리우스도 봤고. 그렇게 열댓개의 행성과 별을 차례로 관찰하고 나니 하늘은 완전히 캄캄해졌다.



드디어 밖에 나와 쏟아질 듯한 별들을 마주할 타이밍이다! 우유니 선라이즈때 본 것만큼 빼곡하진 않았지만, 높은 지대도 찬 공기도 없는 이곳 비쿠냐에서 이 정도의 별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초록색의 마젤란 구름들과 수많은 별들의 클러스트. 너무 밝아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던 오리온자리, 큰개자리, 황소자리, 아틀라스의 일곱 자매들, 양자리, 물고기자리. 물병자리가 흩어놓은 물줄기들. 그리고 천천히 산 위로 떠오르던 남십자성까지. 



주취상태가 아니고 너무 좋아서 흔들린 걸 거야..




알파와 감마별들이 그리던 그 부드러운 직선이 가이드 아저씨의 초록색 지휘봉 불빛을 따라 하늘을 반바퀴 돌아 지구의 자전축을 가리키는 순간에는 뭔가 우주의 신비를 목도한ㅋㅋㅋㅋ기분마저 들었다.



산 위로 떠오르던 남십자성


그리고 어쩐지 수평의 땅을 덮고 있는 거대한 반구 모양의 하늘과 거기에 빽빽하게 박혀 있는 별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왜 옛날 사람들이 지구가 반원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네. 땅이 둥글다는 건 등대에 올라 먼 바다를 바라보지 않는 한 알아채기 힘들었겠지만, 하늘이 둥글다고 상상하기는 참 쉬웠을 것이다. 어디서나 별들은 뜨고 지며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을 테니. 눈이 현혹되는 것이 당연하지. 머리로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말 어쩌면 지구는 반원일지도 몰라....' 하고 되뇌일 만큼 강렬한 시각적 체험이었다. 아마 평생 오늘 밤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투어가 끝난 뒤에도 열심히 별 사진 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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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는 드라이버 아저씨의 추월 본능이라는 것이 폭발했고. 아저씨 아까 저랑 평화롭게 호텔 캘리포니아 부르던 그 분 맞으신 거죠....왜 앞에 다른 차가 가는 꼴을 보지 못하시는 거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2차선에 옆에는 절벽인데 무섭게 이러지 마세요 제발ㅠㅠㅠㅠㅠ무사귀환 무사귀환을 바라는 동안 별을 보며 들떴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창밖을 슬쩍 보니 캄캄한 계곡 위에 보름달이 훤히 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달 모양에 따라 별보기 투어 시간도 달라지겠네. 그믐일 때 왔으면 더 오래오래 많은 별자리들을 볼 수 있었을라나. 그치만 보름달을 원망하기에는 보름달 옆의 작은 별들과, 그 아래 달빛에 물든 골짜기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라 세레나라는 아무 정보도 기대도 없이 온 동네가 내게 이렇게 큰 행복을 주다니. 호스텔 침대에 누워 피곤에 쩐 상태로 이 글을 쓰면서도, 왠지 충만한 기분이 들어 오늘 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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