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11월 29일

만만다린 2016. 11. 29. 15:40





11월에 태어난 (그리고 나와 비교적 가까워서 생일을 축하해 줄 만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랍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고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르면 모든 것은 무질서의 상태로 가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삶은 코스모스이고 죽음은 엔트로피인 걸까. 오히려 내겐 뒤죽박죽인 삶이 엔트로피이며,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이 고요해질 것만 같은 죽음이 코스모스인 것처럼 느껴진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게 될지 줄곧 생각한다. 앞으로의 3년이 어떨지는 뻔하다고, 재미있으면서도 재미없고 안락하면서도 불편하고, 새로우면서도 따분한 시간들. 유영하듯 서서히 그 시간들을 거쳐가며, 아마도 20대 초반의 그때처럼 손쉽게 다른 길을 찾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해 왔다. 요 며칠은 좀 다른 생각이 든다.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뭐가 되었든간에 플랜 B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당장 실행에 옮길수도 있고, 몇 년을 보낸 뒤에 현실이 될 수도 있는 또 다른 계획 말이다. 


앞으로의 n년이 '직업'이라면, 먼 훗날(생각보다 가까울지도 모른)의 n+1년에 내가 몸담게 될 무언가는 '소명'이었으면 좋겠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코스모스 속으로 걸어들어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삶의 의지'라는 걸 태울 수 있다면, 과연 무엇이 그 불꽃의 연료가 될 수 있을지. 아끼는 사람들과 평온한 일상 그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경험 이외에, 온전히 나 자신하고만 관련이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소명'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내가 별다른 열정이나 생의 광채 없이 살아왔던 것은 무엇을 '소명'으로 삼아야 하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폴 칼라니티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를 마치고, 의학대학원에 입학해 인턴 과정을 마치고 나서야 그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서도 끝끝내 뒤돌아보았던 그 '소명'을 발견했다는 점이 내게 막연한 희망을 준다. 내가 앞으로 무의미한 n년을 보내든, 열띤 n년을 보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나는 소명을 찾기 위해 살 것이고, 소명을 찾는데 필요한 생각들과 힘을 기르고 싶다. 그것을 찾기 전까진 얼마든지 엔트로피와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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