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gabond/2015 Chile

D+49 : [Torres del Paine] W트래킹 마지막 날 : 다 이루었읍니다

만만다린 2019. 7. 23. 00:08



2015년 1월 20일




칠레노 캠핑장에서 이르게 시작하는 이날의 일정


*

드디어 4일간의 대장정.. 내 22년 인생 최대의 도전이었던 토레스 델 파이네 W트레킹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늘은 W코스를 왼쪽(서쪽)에서 오른쪽(동쪽)으로 시작한 최대의 이유가 되는 날. 바로 라스 토레스의 일출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그 말인즉슨 새벽부터 일어나 약 2시간 반 정도를 등반해야 한다는 것. 당연한 이야기지만 해도 뜨지 않은 캄캄한 신새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김귤희는 그 당연한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휴대폰 후레시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맨몸으로 이곳에 왔던...것...이다....쓰다 보니 이 어이없는 패기는 뭔가 싶어서 당황스럽네 😳


다행스럽게도, 전날 같은 일정으로 칠레노까지 왔고 또 같은 산장에 묵었던 LA산악회 (역시나 내 멋대로 이름 붙이기) 분들도 일출을 보러 가신다는 것. 당연히 나와는 달리 헤드랜턴으로 무장한 준비된(!) 분들이었고, 무려 가이드도 동반하고 계셨던 덕분에 편하게 발 헛디딜 염려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사이에 끼워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이렇게 올라갔다

가운데에 끼어 있다 보니까 쳐지면 곤란했기에 힘내서 걸었다. 중간중간 격려해 주셨던 감사한 분들




토레스 삼봉까지 가는 길은 크게 어렵진 않았다. 5년 전이라 기억이 미화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 4일차이기 때문에 어떤 난코스가 와도 해탈할 수 있었기도 하고 허허허



암튼 저 멀리 동이 터오는 걸 보며 설레는 맘으로 걸었다


칠레에서는 한국 분들을 못 만나고 줄곧 혼자 여행을 하게 되었고, 어찌 보면 자유롭고 어찌 보면 쓸쓸하게 이곳 최남단까지 내려왔던 것인데. 여기서 만난 감사한 분들 덕분에 따뜻하게 칠레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는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다. 늘 혼자가 좋은 사람이지만, 칠레 여행의 클라이막스를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맞게 되어 기뻤네.




도착했다



안개 하나 없이 맑았던 토레스 삼봉! 그리고 앞의 호수까지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고난 뒤에 이런 풍경만 펼쳐진다면 살맛이 날텐데 😂




말로 다 표현을 못 할 정도로 벅찼다. 절대 이맘때쯤 며칠간 일기를 못 써서 기록이 없어 그런 건 아냐,, 암튼 아니여,,(쥬륵)



해냈읍니다! 오늘도 고생했다 내 월마트産 회색 레깅스야



해-맑

목에 걸고 있는 건 놀랍게도 내복입니다 (.....)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가려 했지만 어쩔 수 없군


새벽에 라스 토레스 전망대로 가는 길은 한여름이라도 추울 수 있기 때문에 꼭 따뜻하게 무장을 하고 올라가야 했다. 저러고 올라갔는데도 바람막이가 얇아서 그런지 꽤 추웠던 기억이 난다. 파이네에는 언제 가도 사계절이 있다더니 과연 그랬어




이거 보려고 일출 시간에 왔어요

이렇게 안개 하나 없이 깨끗하게, 토레스 삼봉이 빨갛게 물드는 걸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들 했다. 조상님 감사합니다



애초에 이 풍경 자체가 비현실적이지만, 이 시간대야말로 꿈과 현실의 경계 그 어드메에서 헤매이고 있는 것 같았던 때



아쉽게도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구름 미웡



언제 봐도 멍해지는 터키색 물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도 정해져 있었고, 칠레노 산장으로 가서 짐도 마저 챙겨야 하기 때문에 슬슬 출발




내려오는 길. 아까는 그저 정신없이 걷던 그 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오니 감회가 새롭다



예쁜 길이었구나


텐트에 대충 던져놨던 짐들을 배낭에 차곡차곡 넣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라스 토레스 호텔로 내려가 본다



돌아가는 길은 왠지 모르게 터덜터덜 걷게 되었다. 그리고 토레스 삼봉을 찍으며 남은 힘을 다 써서 그런지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 그 와중에 W트레킹을 동->서로 진행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마주칠 수 있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 이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울 거야 파이네

이쪽은 또 지금껏 보며 걸었던 풍경과 완전히 달라서 놀라웠다. W트레킹이 토레스 델 파이네를 느끼기에는 최고로 알차다는 말은 사실이었네요



물자를 운반하는 말이었는지... 암튼 열심히 흙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가던 말들도 보고




이제는 야트막한 평지로 변해버린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Las Torres 호텔에 도착했다!


쭈욱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에, 내리막길에 약한 & 4일간 트레킹으로 허약한 다리를 갖게 된 김귤희는 '어어어어어어 모야 다리가 후들거려요오오오오옷' 하면서 내려왔었던.. 것은.. ㅂㅣ밀..




코스를 반대로 진행하면 여기서 1박을 할 수도 있으려나

이래뵈어도 4성급 호텔이었다




주저앉아서 Laguna Amarga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LA산악회 어머님들이 주신 제로콜라 원샷


돌이켜보면 4일 내내 콜라를 지겹게도 먹었다. 산장의 물가는 드릅게 무자비해서 콜라 하나에 몇천원씩이나 했지만, 김귤희는 살려고... 그저 살아남아서 이 코스를 완주하고 싶어서 (따흑) 두어번 거금을 주고 콜라를 사먹곤 했다. 여기선 그야말로 생명수였던 콜라



뿐만 아니라 저세상 디자인의 아이스크림도 여러개 사서 A,B언니와 내게 나눠주시고



산장에서 점심식사로 사놓으셨던 샌드위치까지 챙겨주셨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는데 한 천번쯤 더 할 걸 그랬다. 엄마 아빠도 되게 보고싶고 뭐 그랬던 때라 어머님 아버님들이 베풀어 주시는 작은 온정(!) 하나 하나가 얼매나 소중했는지 몰러


그 와중에 저 샌드위치 엄청나게 맛있었다. 나중에 사회인이 되어 토레스 델 파이네에 돌아온다면 나도 돈 아끼지 말고 산장에서 밥 사 먹어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리고 '사회인들은 절대 토레스 델 파이네에 오지 못한다' 는 걸 깨달은 건 5년 후의 이야기




이내 도착한 셔틀버스를 타고 Laguna Amarga 쪽으로 간다!


나탈레스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이다. 3일 전 국립공원으로 출발해 올 때 대부분 왕복으로 표를 끊게 된다. 

(내가 묵었던 3개의 산장들 중 하나에 내팽개치고 온 게 아닌가 순간 긴장했는데 다행히 배낭 앞주머니에 잘 끼워져 있었다)




3박 4일 내내 질리도록 (사실 전혀 질리지 않았지만) 봤던 봉우리들을 마지막으로 파노라마 뷰로 볼 수 있는 이곳



많이 보고 싶을거야 흑흑


그렇게 나탈레스행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것으로 W트레킹 일정은 끝!





돌아가는 길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또 을매나~~~아름답던지~~~~

피곤하고 금방이라도 쓰러져 잠들 것 같은 상태였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네




봐도 봐도 놀라운 파타고니아의 자연.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영원했으면 좋겠다.


*

그렇게 푸에르토 나탈레스 시내로 무사히 돌아왔다! 내일이면 정말로 칠레를 뜨게 되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