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gabond/2015 Chile

D+39 : [Santiago] 기억의 기억

만만다린 2019. 7. 14. 22:31



2015년 1월 10일



산티아고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이다.


오늘은 4시쯤 발파라이소로 떠날 예정이었기에, 안 그래도 전날 놀고 쉬느라고 거의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 산티아고에서 오전 내내 뭘 할지 신중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어제 못 갔던 예술궁전도, 남산타워 구실을 하는 전망대도 근처에 있었지만 결국 이날 가 보기로 결정했던 곳은 메모리얼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이 위치한 역은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Quinta Normal 역이다

동명의 공원에 위치한 몇몇 박물관들도 겸사겸사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더워서 실패..



멕시코에서 4개월, 이후 페루-볼리비아를 거쳐 칠레에 왔는데 지하철 시설에 감탄부터 하고 시작한다

안내방송 나오는 게 (2014년 기준) 제일 신선한 충격이었음. 멕시코시티에서는 매번 긴장 바짝 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신세계를 경험했네



신문물 맘껏 체험할 새도 없이 빠르게 도착한 Quinta Normal 공원이다




전날만큼이나 찌는 듯한 날씨였고, 분수대에는 신난 아이들이 가득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자연사 박물관




아이들과 온다면 메모리얼 박물관보다는 이곳을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김귤희도 원래는 들러 볼 계획이었지만 더위와 귀찮음이.. 박물관 탐방이라는 지적 욕구를 이겼다 (..)

코뿔소랑 모아이 석상 봤으니 다 된 거 아니겠냐 하며 발걸음을 돌림




공원 건너편에 있는 오늘의 진정한 목적지



웅-장



입구부터 인상적인 글귀로 김귤희 감화시켜 버리기~~ (박물관은 하나의 학교이다 : 예술가는 소통하는 법을, 대중은 관계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


이곳의 풀네임은 Museo de la Memoria y los Derechos Humanos. 피노체트 군부 정권 하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인권 탄압 사례들을 보존하고, 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박물관이다. 이곳에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는 동시대를 살며 독재정권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칠레의 시인인 Gabriela Mistral의 이름이 붙은 박물관도 있다.



토요일 오전이었고. 자선 행사 같은 걸로 보이는 케이터링 서비스가 한창이었다.

점심도 못 먹은 주린 배를 안고 유유히 지나가 본다.. 이날 왜 점심도 못 먹고 다녔지 늦잠 잤나봄


*

박물관 내부는 촬영 불가. 지하에 있던 특별전만 촬영 가능했고 내가 방문했던 때에는 미술 전시를 하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미술 작품만 몇 장 찍어 옴

지하는 특별 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1~3층까지 걸쳐 수많은 자료와 증언들이 가득 차 있었다.


*

정작 '인권 박물관'의 면모를 드러내 주는 것들은 하나도 찍어오지 못해서... 당시 일기를 쓸 때도 이때의 생각이나 기분들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아마도 실제 사료나 개개인들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 촬영을 허가하는 건 민감한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마르께스의 <칠레의 모든 것>을 들고 다니던 중이었고, 책 속지에 스탬프들을 꾹꾹 찍어 돌아왔다.


도시 한복판에 3층짜리 거대한 건물을 세우고, 한 나라의 역사적 오점이라면 오점일 순간들로만 공간을 꽉 채웠다는 자체가 우선 놀라웠고. 나들이 가기 좋은 날씨인 토요일 오후에도 수많은 칠레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지구 반 바퀴 너머에 있는 우리 나라도 사건사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 워낙 쉴새없이 터지는 작은 나라여서 그런지 - 곳이지만, 가끔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좁은 땅덩이에 추모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대다수가 된다면, 그게 다수의 의견이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설령 그렇다면 내 머릿속에라도 작게나마 '기억하는 곳'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라도 부지런히 기억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길. 




기념품샵

그새 나이가 들었는지 5년 전 이 여행을 하면서 아옌데 대통령의 얼굴을 보는 거랑... 지금 블로그에 새롭게 글을 쓰며 느껴지는 거랑 많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뭐 아무튼 칠레 사람들은 아옌데 대통령을 많이 그리워하고 또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엽서와 배지를 잔뜩 쓸어담아서 돌아옴. 박물관 미술관만 가면 이성을 잃어버리고 마는..(아득



나오는 길. 시간은 어느새 한낮을 넘어 늦은 오후였고.. 산티아고에서 보는 칠레 국기는 어쩐지 볼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외국 사람들이 서울에서 태극기를 봐도 이런 기분일까



먹지 못한 점심은 길거리 핫도그로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소스 고르는 데에만 오분이 걸리는,, 이곳이 바로 핫도그계의 베스킨라빈스인가요



녹색 살사에 치즈 소스 뿌려먹기 냠냠


*

발파라이소로 가는 버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서둘러 아르마스 광장으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짐을 찾아 나오는 길..사진은 없지만 광장에서 핫도그 하나를 더 사먹고 (?)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칠레 핫도그 너무 맛있고 물가는 사악하기 때문에 딱히 다른 선택지는 없었음...


발파라이소로 가는 버스를 어느 터미널에서 탔는지는 기록도 기억도 없기 때문에 나중에 생각나면 추가하는 걸로 하며. 산티아고도 이렇게 안녀엉

멕시코시티만큼이나 오래 즐길 수 있는 도시였지만 시간 관계상 거의 보지 못한 게 아쉽다. (남은 건 아씨마트에서 산 인스턴트 면들 뿐이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2주 정도는 머물러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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