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3 : [Uyuni] 2박 3일 투어 마지막 날, 칠레로 가자
2015년 1월 4일
해발 4000미터. 자비 없는 고산지대에서 세 잔이나 꽉꽉 채워 마신 와인의 휴유증으로 밤새 끙끙거리며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 분명 4시에 아침을 준다고 했는데....? 하고 밖을 힐끗 보았으나 주변은 아직 깜깜했다. 어리둥절하여 손목시계를 보니 3시였다. 다시 휴대폰 화면을 자세히 보니 시계 위에 작게 떠 있는 두 글자...칠...레.....어제 깔라마 국경에 갔을 때 G2레기가 칠레 시간으로 스스로를 동기화 해 놓았던 것이었다. 에라이 이런 재주는 쓸모없어! 쓸모없다구! 하며 침낭 안에 폰을 던져 버리고 다시 꿀 같은 한시간의 수면을 취하려 시도한다.
그런데....간밤엔 몰랐지. 이 방이 이렇게 춥다는 것을. 벽 4개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ఠࡇఠ
끝내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남은 한시간은 뜬 눈으로 보냈다. 어차피 이번 숙소는 샤워실 따위 없었니 일찍 일어났다고 씻지도 못하곻ㅎㅎㅎ아니 어제 거긴 찬물이라도 나왔는데 여긴 샤워기라는게 없어.. 다행히도 이내 달그락거리며 아침을 준비하시는 소리가 들려와 적적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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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아침은 볼리비아식 펜케이크인 panqueque. 얇은 전병같은 것을 돌돌 말아 먹는 것이다. 수크레 호텔에서 조식으로 줬던 바로 그 감격의 펜케이크! ! 쉴새없이 먹다 보니 5개 이상을 먹은 듯 했다. 늘 우리 팀에서 가장 많이 먹는 일본 아저씨보다도 더 먹어서 혼자 뿌듯해 했읍니다. 요거트도 먹고 잼도 먹고 캬라멜도 먹고 아무튼 식탁 위에 있는 걸 다 주워먹을 정도로 이날 오전엔 식욕이 좋았다. 국경을 넘는 우리에게 닥칠 시련을 예견했던 모양인지...알뜰하게 에너지 보충하는 김귤희 선견지명 좀 보소
그렇게 다시 지프차 맨 뒷자리에 쪼그려 앉아 우유니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시작한다.
3일차 일정은 오전에 끝나기 때문에 동도 트기 전 출발해야만 했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땅 틈으로 새어나오는 유황 연기 (???)
그걸 왜 보러 간다는 걸까...하고 동행과 투덜거리며 가는 내내 뒷좌석에서 잠보충을 했는데
내리자마자 진한 유황 냄새가 마중을 나왔다. 하늘을 뒤덮는 유황 연기도 나름대로 진풍경이었다. 그 와중에 슬리퍼를 신고 와서 사정없이 얼어붙고 있던 내 발가락ㅠㅠ 주인이 멍청해서 미안하다ㅠㅠ
이틀 내내 어딜 가도 심드렁하던 아르헨티나 아버지가 여기서 매우 기뻐하는 걸 봤다. 역시 나이가 들면
내부는 이렇게 생겼고 발이 너무 시려워서 순간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낌 (그러지 맙시다)
좀 더 구경하고 싶다가도 추위에 뒤져버릴 것 같아서 다시 차 안으로 허겁지겁 들어가야만 했다. 들뜨신 아르헨티나 아버님을 약 20여분동안 더 기다렸다가 우리의 차는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그리고 우유니에서의 마지막 목적지인 노천온천으로 달린다.
일출 보고 싶다고 찡찡거렸더니 크리스티앙이 일부러 남쪽 방향으로 달려서 선물해 줬던 롸이징썬✧◞✧
(이라곤 했지만 그냥 가는 길이 남쪽이었겠지....그래도 생색 내는 크리스티앙이 커여워서 고맙다고 호들갑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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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투어를 하기 전에 사실 가장 기대했던 스팟이 바로 이 노천온천이었다.
전날 못 씻고 하는 야외 온천이라니 겁나 짜릿할 것 같잖아요....그치만 안타깝게도 주머니를 뒤져본 결과 입장료 3볼과 탈의실 이용료 6볼이 나에게는 없었다. 과일쥬스 한잔만 덜 사먹을걸! ! ! 하고 땅을 치며 후회해도,, 뭐 아마 시간을 돌린다 해도 나는 과일쥬스를 사먹었을거야^_ㅠㅠ
막상 우유니의 새벽 추위를 경험하여 보니, 이 미친 날씨에 비키니만 입고 온천에 몸을 담그는 게 쉬운 일도 아닐 테고. 그렇게 여차저차 자질구레한 이유들로 그냥 밖에서 구경만 하기로 한다
생각보다 너무 온천이 작아서 흥이 다 깨져버렸기도 했고 말이야 흥 (신포도)
우리 팀 아야코쨩과 함께 조심조심 발만 담그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모험심 강한 몇몇 사람들이 저마다 비명소리를 내며 수영복 바지 차림으로 온천에 뛰어들곤 했음...어떤 일본인 남자애가 너무 행복하게 하아아~~시아와세~~~하면서 탕 안을 유유히 헤엄치던 게 기억에 남는다. 청춘이구만
옆으로 흐르는 강에서도 뜨거운 김이 펄펄 나고 있었다. 이 근방이 전부 화산지대라 이런 곳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황망히 주변을 둘러보던 오빠와 나는
아니 저거슨
야마 패거리??!!!! (서둘러 달려가는 중)
호에에에엥 정말이자나 너무 귀여워(●♡∀♡)
2주 조금 넘는 기간동안 페루 볼리비아를 여행하면서 많은 야마와 알파카들을 봤지만 이렇게 많은 수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처음야
따흑 너무 착하고 귀여운 친구들 ㅠㅠ 놀래키지 않으려고 조용히 다가갔으나 매번 들켜서 쫓아내고야 만다..
이때 '이제 칠레 가면 야마 없겠지...우유니가 마지막으로 내게 야마 종합선물세트를 준 건가...' 하며 아쉬워했는데. 막상 칠레에 가 보니 정말 한 마리도 없었다. 아따까마 마을에서 딱 한 마리 보고는 저어언혀 만나지 못했던 것. 야마친구 알파카 친구는 정말 안데스 산맥 근처에만 사나 봐
한참을 정신 놓고 야마랑 열심히 놀고 있는데 누군가 펄쩍펄쩍 뛰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크리스티앙이었다.
뭐라고 하는지는 1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손짓 발짓이 너무 급해 보여서 호다다닥 달려가고야 말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국경 사무소가 8시 반에 오픈하는데 지금 벌써 7시라며, 가는데 여기서 한 시간 반정도 걸리니 얼른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투어 팀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사람은 나와 T오빠 뿐이었기에... 너무 황급히 떠나느라 팀 사람들이랑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고마운 가이드 크리스티앙과도 5초 정도의 작별인사만 하고 말았다. 우유니 가이드로 사는 것에 대해 (?)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늘 지프차 맨 뒷자리에 짱박혀 있느라 (어리고 젊은 것이 죄였다) 크리스티앙과는 몇 번 말을 나눈 것이 전부였다. 2박 3일 내내 정말 착하게 대해줬었는데....아직까지 가이드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좋은 여행객들만 상대하며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래본당. 지금쯤 우유니로 가는 관광객들도 더 늘었을 테니 영어도 배웠겠지? 아무튼 행복해야 해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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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빠와 나는 다른 빨간 지프차로 갈아타고 한참을 내리막길로 달렸다.
또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아직 8시도 안 된 이른 시간. 아니 저기요 한 시간 반 걸린다며...... 야마 더 보고 싶었는데 우릴 왤케 재촉해서 차에 태운 거야 흑흑...... 하며 굳게 닫힌 사무소 문 앞에서 오랫동안 달달 떨어야만 했다. (아마 2박 3일 투어를 하는 여행객들을 전부 한 번에 칠레로 넘기기 위해 서둘렀던 게 아닌가 싶다. 사무소 앞에는 관광버스들과 봉고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할 게 딱히 없었던 덕분에 내 발의 꼬락서니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어제의 맨발로 바위산 기어오르기 + 모래자갈 바닥 뛰어다니기로 인하여 발톱은 다 깨지고 등은 타고 트고(!) 이게 사람 발이냐며 쿠사리를 먹는다.... 아니라고요 내가 아타카마 가면 진짜 깨끗하게 씻고 로션도 바를거라고 ㅠㅠㅠ 두고보자 아타카마...하는 와중에 사무실 문이 덜컹 하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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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 사무실 직원 할아버지의 단호함과 까칠함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문이 열리자마자 '두 명씩!'을 외치고는 이따금씩 사람들이 세명 네명 무리로 들어갈 때마다 불호령이 떨어졌다. 우리의 차례가 되었을 때는 이미 둘 다 초긴장 상태였음. 그 와중에 입국할 때 받은 이미그레이션 카드를 달라고 하는데, 가방을 좀 뒤지니 내 것은 바로 나왔지만 오빠는 아니었다. 루레나바께로 가는 국내선을 탈 때 공항직원이 카드를 가져갔다고 한다. (???어둠의 카드 컬렉터냐고)
카드가 없어서 내야 하는 벌금은 무려 50달러였다. 무엇을 위해 내야 하는 벌금인지 잘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ㅅ; 100달러짜리를 내밀니 거스름돈이 없다며 우리가 알아서 바꿔와서 내라고 해서 순간 개빡쳤던 건 이날 오전의 작은 에피소드,,, 돌이켜 보면 남미에선 참 이런 경우가 많았다. 가게에서 뭘 사거나 여행사에서 투어를 예약하거나 심지어 박물관에서도 거스름돈이 없다며 나더러 알아서 바꿔오라는.......하아.....(이마짚).....그때마다 뭐 그까짓 꺼 슈퍼에서 물 하나 사고 바꾸지 뭐 하며 쿨하게 바꿔오긴 했지만. 이 휑한 사막 한복판에서 50달러를 알아서 만들어 오라는 요구에는 내 얄팍한 인내심이 견디지 못하였나 보다... 아니 그걸 왜 저희가 만드나욧! 하며 몇 번 따져 보았지만 결국 할아버지 목소리가 훨씬 더 컸고 일단 밖으로 후퇴하였다 ( •́ ̯•̀ ) 쭈굴..
어쩔 수 없이 줄을 서있는 사람들에게 한명씩 물어 물어 도움을 요청했고 다행히도 어느 브라질 아저씨의 도움으로 돈을 바꿀 수 있었다. 노란 잠바를 입고 계시던 아저씨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표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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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까스로 벌금을 내고 나오니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밀려왔다. 동행이 5만원을 지출하는 걸 막아 주진 못했지만, 어쨌든 국경을 무사히 넘었다! 페루 볼리비아 여행을 안 털리고 무사히 한 조각으로 끝마쳤어! ㅠㅠㅠ 마지막 이미그레이션에서 험난한 일이 있어서 볼리비아에 남은 정이 다 떨어져 버렸고 그래서 이때는 우리 둘다 1분 1초라도 빨리 칠레로 꺼져버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볼리비아는 두 번 좋으면 한 번 싫은...? 근데 그 두 번 좋은 게 격하게 좋아서, 한번 싫었던 건 결국 기억조차 못하게 되는....마성의 나라였던 것 같다. 애증의 볼리비아.
우유니에서의 6일이야 뭐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여행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고, 특히 우유니 3 days tour는 최고의 순간 중 최고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당. 이걸로 볼리비아 안녕! 칠레 안녕!!! 내 남은 여행들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