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 : [Potosi~Uyuni] 우유니로 가는 길에는 포토시가 있었다
2014년 12월 30일
우유니로 가는 날. 볼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타는 중~장거리 버스. 얼마나 이 여정이 길어질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 늦잠을 자느라 먹지 못했던 아침을, 기다렸다는 듯이 식당으로 뛰쳐 내려가 알차게 챙겨먹는 것이 오늘 하루의 시작이었다.
호텔 콜로니얼의 중남미식 panqueque(팬케이크)는 시럽에 푹 절여져 돌돌 말려 있어 어쩐지 첫눈에 팬케이크라고는 할 수 없는 비쥬얼이었지만, 그 쫀득하고 달콤한 맛이란ㅠㅠㅠ 그렇게 수크레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미각 쇼크를 주고야 말았다. 아 우유니 가기 싫으네요. 가서 버스표 취소하고 올까.... 수크레에 오기로 결정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라 생각하며 세 개나 집어먹고 (자꾸자꾸 가져다 주셨더 친절한 직원 분들도 너무 좋았다)
로비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수크레 버스 터미널로 갔다. 크으 여러모로 호사스러운 아침
첫 볼리비아 도시였던 코파카바나에는 터미널이랄 게 없었고 라파즈에서도 워낙 밤 늦게 도착했던 탓에, 곧바로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직행했었더랬지...그래서 볼리비아에 온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지만, 버스 터미널에 직접 들어와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곳에서도 아레키파에서처럼 세금 비슷한 걸 내야 하더라.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왠지 낼 때마다 굉장히 아까웠음^^
그저께 먹고 감탄했던 수크레의 초콜릿 가게 Para ti가 터미널에도 있길래 진리의 코코넛 맛을 하나 샀다. 먹을 거랑 기념품이랑 옷 살때는 팍팍 잘 사면서 세금은 아까워하는 모순적인 나의 모습......아무튼 버스 여행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수크레부터 우유니까지 유일하게 직행 노선을 운행하고 있었던 (2014년 기준) 26 de Octubre라는 이름의 회사의 버스에 올랐다. 10월 26일은 또 무슨 날이려나 독립기념일쯤 되려나. 자리에는 비록 안전벨트는 없지만 그래 이정도면 볼리비아에서 최상급이 아닐까 싶은 꽤 괜찮은 버스였다.
나중에 먹으려고 했지만 결국 버스 타자마자 po개봉wer
수크레 버스터미널은 꽤 높은 곳에 있었기에, 출발하자마자 창밖으로 수크레 시내가 다 내려다보였다. 어제 비 때문에 전망대에 가기로 했다가 못 갔었는데 이렇게라도 전경을 보니 좋네
여기서 내 중남미 여행의 최대 미스터리였던 버스들의 저속운행을 또 경험하게 된다. 우리 버스는 이래서 언제 우유니까지 가냐 싶을 정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렸는데.... 추측해 보자면 볼리비아의 도로 사정이 그다지 좋지 못하고, 대부분의 버스가 그런 도로를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리고...그래서 종종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아마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몇몇 회사들은 저속운행을 하는 게 아니었을까.
이래저래 추측을 하는 와중에, 느린 속도로 점차 올라가는 해발고도가 익숙한 두통과 답답함을 가져다 주었다. 맞다 우유니도 고산이라고 했지. 소로체 먹어야 했었는데 또 캐리어에 넣어놨네. 억지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도착한 우유니는 또 얼마나 높을지 미리부터 걱정도 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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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어 시간을 가던 버스는 어느 작은 식당에 잠시 멈춰섰다. 점심 때가 되었으니 밥을 먹으라고 내려주는 것 같은데 속이 영 좋지 않아 그저 멍하니 식당 앞에 주저앉아 있다가, 암만 봐도 한국인인 어느 여자분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하다가 슈퍼에 가서 볼리비아산 과자도 하나씩 사고는 다시 버스에 탔다. 우유니에서 이틀 정도 함께 지냈던 S언니와는 이렇게 만나게 되었고. 또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처어어어언천히 한참을 달리다 보니 버스는 어느 새 포토시 시내로 들어서 있었다.
어딘가 꿈속 장면 같았던 포토시의 어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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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크레에서 우유니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나처럼 비싼 돈 주고 몸 편히 직행버스를 타고 오거나, 포토시까지 와서 다시 우유니로 가는 버스를 타거나. 어떻게 가더라도 루트상으로 무조건 포토시를 지나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은 광산마을인 포토시의 역사는 꽤나 길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이미 은광업이 성행하였고 지금까지도 어찌어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 어디서나 Cerro Rico라 불리는 커다란 봉우리가 보인다. 직역하자면 '풍요로운 언덕'쯤 되려나. 그렇지만 지금은 Rico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그 크기가 많이 작아졌다고 한다. 식민시기의 가혹한 수탈과 이로 인한 무리한 채굴 작업이 가장 큰 요인이었을 터. Cerro Rico이 지금은 Cerro pobre가 되었다고 볼리비아 사람들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포토시의 영광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볼리비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단 포토시는 은광업의 쇠퇴와 함께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곳에 들르는 여행객들이 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투어 중 하나라고 불리는 포토시 광산 투어를 하기 위해서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포기 각서를 쓰는 것은 물론이다. 오래된 갱도가 언제 무너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없이 햇빛 한줌 들지 않는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광부들과 함께 구불구불한 갱도 안을 위태롭게 지나간다고 한다. 갱도 안에는 광부들이 만들어 놓은 석상이 있다. 카톨릭을 강요했던 스페인 지배자들의 눈을 피해 땅속 깊숙한 곳에 만들어 놓은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 석상. 매번 그 앞에서 오늘도 무사히 하루 작업을 끝마치길 기도했을,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을 이곳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어쩐지 가장 위험한 투어라기보다는 가장 눈물나는 투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마도 저것이 바로 Cerro Rico 혹은 Pobre
하루도 빼놓지 않고 두세 시간씩 내리던 우기의 볼리비아의 비는, 마침 포토시에 도착했을 때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고 있는 흙과 돌과 집들, 뾰족한 성당의 첨탑과 그 뒤로 보이는 초라한 봉우리를 그냥 그렇게 버스를 탄 채로, 천천히 바라만 보며 지나가게 되었다.
다시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창밖 풍경은 내셔널 지오그래피
우유니까지도 3시간 정도 남았으려나. 엉덩이가 네모 되겠어요
그래 바깥 풍경 멋진 것도 좋지만
분명 우유니까지는 6시간 정도면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쩐지 7시간째 버스를 타고 있으며....아직 도착하려면 두어 시간은 남은 것 같은걸요... 뭐 괜찮겠지 우유니에 도착하면 널린 게 여행사고, 널린 게 숙소일 테니까 맘을 놓고 다시 창밖을 보기 시작한다. 건너편 자리의 일본 여행객이 '보-리비아' 라고 써진 여행책을 읽고 있어서 왠지 신기하였고. 확실히 일본 사람들에게 남미 배낭여행이라는 건 10년 20년 전부터 꽤나 익숙한 일이었겠구나 싶다.
어제 사놓은 자두 덕분에 살았네
자두 마시쪙. 그렇게 사 놓은 과일을 탕진하고 아까 산 과자도 다 먹어버리고 배고픔에 지쳐 잠들었다 깨니 시간은 어느덧 6시. 풀풀 날리는 우유니 마을 도로 한복판에 버스가 정차하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볼리비아의 마지막 여행지에 왔네요
이런 시장바닥에 내려준 걸 보니 여기도 제대로 된 터미널이 없나 보구나 허허.... 일단 버스에서 만났던 S언니와 함께 오늘밤 몸 누일 숙소를 찾아 헤매이기 시작했다. 푸노에서 강제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낸 그 날부터 묘하게 여행 일정이 요동치고 있었고, 혹시 몰라 멕시코에 있을 때부터 예약해 놓았던 우유니의 호스텔은 내일자로 예약되어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가 보았으나 오늘은 풀부킹이라고. 에이 그래도 어딘가엔 자리가 있겠지 하며 여기저기 4군데 쯤 더 둘러 보았으나 왜인지.... 다들 빈 침대 하나 없다는 것이었다.
뭐지 뭐지 이게 뭐지?????? 우유니에 널린 게 숙소일 텐데 자리가 다 없대????? 이제 와 생각해보니 아마 이때가 연말이라 우유니 전체가 여행객들로 가득 찼었던 것 게 아니었을까...
괜찮ㅇㅏ요....바닥에서 자진 않겠지....망연자실하여 되는 대로 걷고 있는데 우리의 눈 앞에 들어온 것은 ★Brisa Tour★라는 간판이었다.
우유니에 오기 전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바로 그 브리사 투어. 한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투어사 브리사. 문 앞에는 오늘과 내일자의 선셋, 선라이즈 투어 명단이 인솔자 이름과 함께 걸려 있었고 그 중 80% 이상은 익숙한 한국인들의 이름.....무슨무슨 최....무슨 김....아아 반가워 사람들아.......(어쩐지 직원들이 여행사 외벽에 종이를 붙이면 사람들이 우르르 자기 이름을 적는 식으로 예약을 받는 모양이었다. 이메일로도 받긴 하는 모양이지만 밑에 나오는 내 경험을 보면 좀 못 미더웠어 - 2014년 기준) 그리고 브리사 투어가 유명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죠니라는 이름의 가이드였다. 사진을 그렇게나 잘 찍어 주기로 유명해서 완전 한국인들 지명 가이드라고 한다.....그리고 이 가이드가 따라가는 내일자 선라이즈 투어는 이미 다 차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허어엉 죠니 죠니' 하며 브리사 문 앞에서 언니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자니, 며칠간 우유니에서 지내며 가장 많이 대화했던 현지인(...) 이었던 브리사 직원 Marisol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지금 여기 죠니 선라이즈 투어에 1번 2번 사람들 보이지? 이 사람들 지금 이메일로 예약해놓고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7시 반까지 이 사람들 안 오면 취소하고 너네 이름 써줄게" 라고 하는 것이다.
헐 잠깐만요. 이건 지금 숙소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바닥에서 자도 좋으니까 우리는 죠니와 투어를 해야만 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닼ㅋㅋㅋㅋ죠니!!!!!! 죠니!!! 하고 부르짖으며 (이쯤 되면 유일신) S언니와 브리사 바닥에 주저앉아 7시 반이 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고. 끝내 그분들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죠니의 선라이즈 투어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예이!!!!!!!!!!! 이건 진짜 운이 억수로 좋다고 밖에....죠니 투어는 종이 붙이자마자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자기 이름 우르르 쓰는 통에 20분이면 다다음날 것까지 다 찬다는데, 우리는 어쩌다가 투어 바로 전날 밤에 도착해서 이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디 우리 팀에 누구누구 있나 하고 명단을 보니 라파즈에서 같이 다녔던 J오빠의 이름이 반갑게 적혀 있었다. 역시 남미에서 만난 사람 또 만나고 만나고 하는 건 사이언스야.
(+) 그 와중에 수크레에서 서로 다른 버스를 타고 우유니로 오느라 잠시 생이별을 해야 했던 H언니 Y오빠 일행이 우르르 브리사 투어로 들이닥쳐서 또 한 번 우리는 뒤집어지고야 말았다 ㅋㅋㅋㅋㅋㅋㅋ 이들은 이미 다른 여행사에서 1박 2일 투어를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모두와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H언니는 우리와 함께 내일자 선라이즈 투어를 하기로 했다.
불타는 협상을 마치고 브리사 직원 Marisol 언니가 우리를 위해 소개해 준 호텔로 출발
ㅋㅋㅋㅋㅋ여기 정말 웃기고 희한한 곳이었는데 투숙객은 전부 일본인 한국인에, 와이파이는 거의 먹통이었지만 나머지 시설들은 무난했고. 무엇보다 주인분과 점원분들이 역대급으로 불친절했다. 그 언프렌들리함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해서 오히려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웃겼던 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여기서 싸게 1박 잘 묵었다....
저녁은 마나호텔 옆에 있던 식당에서 대충 때려먹기로 하고 아무 음식이나 시켰는데 고무 타이어 같은 소고기가 밥 위에 올려져 나오는 충공깽 상황
우유니 시내의 식당 퀄리티는....앞으로도 계속 쓰겠지만....지금 돌이켜봐도 눈물이 난다.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자.... 슈퍼에서 과자와 맥주를 사 먹는 것이 배는 고파도 행복은 잃지 않는 단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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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밥을 먹고 돌아오니 시간은 이미 밤 11시에, 선라이즈는 2시 반에 출발이고. 잠을 자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피곤이 극에 달해 있었기 때문에 눈을 감자마자 기절해 버렸다. 몇 시간 뒤면 드디어 바로 그 우유니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