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gabond/2014 Bolivia

D+25 : [La Paz] 괜찮아 라파즈는 널 해치지 않아

만만다린 2019. 4. 29. 21:15



2014년 12월 27일



볼리비아의 행정 수도에서




밤에는 추워서 몇 번씩이나 깨고 결국 답지않게 7시쯤 일어나는 기이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언제 어디부터였지. 쿠스코부터였나....어느 새 까마득해진 일주일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전날 빈 속에 마신 커다란 파스께냐 맥주 한 병에도 불구하고 일찍 눈을 떴고 덕분에 일찍 씻게 되었다. 같이 코파카바나에서 넘어왔던 동행 오빠분은 터미널에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래 내가 요 며칠 계속 한국인 동행이 있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인생은 존나 혼자 사는 것이다~~ 하며 아침이나 먹으러 가 본다.


코파카바나에서는 아침 그게 뭐죠? 하는 숙소에서 묵었기 때문에, 볼리비아에서 먹는 첫 아침이었다. 호스텔 식당에는 페루에서 보던 것보다 최소 5배는 더 큰 동글동글 말린 버터가 있었다. 알차게 싹싹 다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빵을 4조각이나 집어먹고 있더라....이야 나 잘 먹는다! 4조각이라니! 신나서 평소엔 먹지도 않는 과일잼도 팍팍 발라서 먹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카넬라 차도 마시고 하며 전날 하루죙일 거의 먹지 못한 것에 대한 한풀이를 하고 나서 다시 천천히 방으로 올라오니



전날의 야경이 아침엔 이렇게 변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달동네라는 누군가의 말이 와닿는 광경


*

어느 새 터미널에서 돌아와 있던 J오빠와 어딜 가볼지 대충 계획을 세우고는, 오늘 쓸 돈이 단 1볼도 없었기 때문에 돈을 뽑으러 나간다. 예 그렇습니다. 라파즈에서의 첫 외출.....그것을 홀로......그것도 하필 돈 뽑으러. 지금껏 들었던 라 파즈 앞에 붙는 수식어는 대강 비염 유발 도시, 무서운 동네, 소매치기 조심하세요 물론 강도도^*^ 뭐 이런 정도. 론리플래닛에도 라파즈 부분에는 특히 ★주의★하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이야 오랜만에 느끼는걸 이 쫄깃쫄깃한 기분? 그래 그동안 여행이 너무 순탄했지..(?)하며 일단 호스텔 대문을 힘차게 열었다. 소문대로 라파즈의 공기는 매캐하였고 숨 쉬기가 어렵다는 걸 피부로 느끼며. 여기가 고산이라 공기가 적어서 그런거냐 아니면 그냥 공기가 더러워서 그런거냐... 아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공기가 더럽기까지 한 것이로구나.....어쨌든 최대한 덜 두리번거리려 노력하며 무사히 은행까지 도착했다. 


ATM기 앞에서 빠른 속도로 버튼들을 눌러 500볼을 단숨에 뽑고는 '앗 넘 많이 뽑았나'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한화로 9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작았던 이곳의 화폐 단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 최빈국에 속하는 볼리비아는 왠지 지폐조차 고급지지 못했다. 새싹은행에서 찍어냈다고 해도 믿을 것만 같았던 휑한 종잇돈을 휙휙 세고는 누가 볼까 얼른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하루에 숙박비 포함해서 120볼 정도 쓴다 하면 4일은 충분히 쓰겠구나 하며 뇌내 계산을 마치고, 바로 앞에 있던 노점상에서 물과 초콜렛과 과자 한 봉지를 (...마치 돈이 있으면 바로 소비를 해버리는 파블로프의 개마냥...) 사 버리고는 어쨌든 좋아진 기분으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전 글에도 썼지만 내 숙소는 여기로 추정되는데 (동행을 따라간 곳이라 기억이 안 난다...) 기억조작된 거면 어쩌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오모낫. 쿠스코에서 묵었던 숙소에서 내 옆침대였던 한국 분 이곳에서 또 만났던 것이다. 12학번 후배를 닮아서 '오....' 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성격마저도 그 후배랑 똑 닮아서 신기했건만 여기서 또 보게 되다니

(이 때 어렴풋이 깨달았다....12월의 남미여행에서는 한국인을 피하는게(?) 더 어렵구나...)


아무튼 반가운 마음으로 오늘 하루는 셋이 같이 다니기로 했다. 편의상 B오빠로 부르자....그렇게 든든하게 라파즈 시내 구경을 시작

내가 여길 혼자 다닐까봐 얼마나 무서웠는데 역시 하늘은 쫄보가 그냥 뒤지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에요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은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것이었다


라파즈에는 총 3개의 케이블카가 있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곳에 사는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교통에 가깝다.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많은 집들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이동수단이 필요하기 때문. 그리하여 티켓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2014년 기분 왕복 6볼 - 한화로 960원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일단 관광객으로서.... 트립 어드바이저 La Paz 페이지 영예의 1위!!!!를 차지한 Teleferico Rojo (빨간 라인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간다. 아니 근데 저기요 케이블카로 언덕 오르는 거라면서요. 어째서 가는 길부터 험난한 건데요 이 동네는 어째 언덕 아닌 곳이 없냐. 경사가 거의 70도에 가까워보이는 언덕을 열심히 올라,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남미 사람들은 참 별 거 아닌 곳 앞에서도 사진을 찍어서 늘 즐거워 보였는데 (ㅋㅋ) 저 깃발 앞에서도 사진을 찍으셨다..



출발합니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바람에 세포 속 깊숙히 자리한 고소공포증이 되살아나는 기분을 느끼며,,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허름한 집들이 좁고 가파른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느 집에 빨래를 몇 개 널었는지, 개는 몇 마리 키우는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케이블카는 꽤나 가까이 그 위를 스쳐 지났다. 어찌되었든 난생 처음 온 도시의 난생 처음 본 풍경에 신기한 마음으로 사진을 열심히 찍다가도, 지금 내가 그들의 삶에 너무 바짝 붙어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맘이 조금 불편해졌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어느덧 정상에 도착하였고, 내리자마자 전망대로 달려가서 본 볼리비아 행정수도의 풍경





전망대라고는 하지만 케이블카 시설들로 뷰가 가려져 조금 아쉽긴 하였다


어쨌든 왔으니 사진이나 몇 장 찍고. 늘 그렇듯이 바닥에 주저앉아 쉬며 한참 동안 페루 여행 얘기를 했다. 한국 사람들이 크게 2가지 방향으로 (시계 방향/반시계 방향) 중남미를 돌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이미 다녀온 여행지가, 다른 누군가에는 곧 가게 될 두근두근한 여행지가 되는 게 늘 좋았네



케이블카가 없을 때는 여기까지 어찌 올라왔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아주 높은 곳에 있던 집


그렇게 (어쩐지 바닥에 둘러앉아 금방이라도 화투를 꺼낼 것 같은 포스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던 캉코쿠진 세 명은 문득 배가 고파졌고 식당을 찾아 헤매어 본다 ૮⍝◜•⚇•◝⍝ა 



바로 옆에는 토요일에 열리는 시장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네? 매머드요?



작은 운동장에서는 축구도 한창이었다. 남미 사람들 축구 사랑은 알아줘야 해




코끼리 수집가



주변을 둘러보니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하늘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렇게 어두컴컴하고 세기말적으로 흐린 하늘이라뇨 지구 멸망하는 날인 줄




그리고 발 아래 내려다보이는 숨막히는 라파즈의 전경. 이걸 본 순간 라파즈가 갑자기 마음에 들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욱 심각했던 라파즈의 대기오염. 그리고 서울 도심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주는 숨막힘 때문이었을까 




뒤로 보이던 벽화는 아마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민운동을 기리는 것이었나 보다

그렇게 한참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서 황급히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가 본다



내려가는 길

창문에 스티커가 붙지 않은 몇 안 되는 카를 탔지만 비가 오는군여..





비내리는 갬성샷을 찍어 보겠다고 우리 모두 창문에 붙어 열심히 시도했지만 딱히 건진 것 없이 실패로 끝났답니다...


*

케이블카 탐방은 이걸로 끝. 내려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산 프란시스코 성당과 광장 쪽으로 향했다

돌이켜보면 라파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다녔는데 동행 오빠들 덕분에 쏠쏠한 구경을 마니 했네...




도착하자마자 식당부터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엠빠냐다 집에서 홀린 듯 나란히 이걸 사먹었다

(사실 주인 아주머니가 이건 엠빠냐다가 아니고 좀 다른 거라고 설명해 주셨었는데 그새 까먹었다 살테냐도 아니었는데 뭐였지??)


아무튼 좋은 에피타이져이다~~ 하며 라파즈 도심의 언덕을 이리저리 오르고 다니다가 들어간 곳은 결국 아무 로컬 식당.




육전(ㅋㅋㅋㅋ?) 하나와 닭전 하나 그리고 구운 소고기를 사이좋게 시켰다


비도 오는데 역시 전이네 하면서 싹싹 긁어먹었다.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시장바닥도 아닌...나름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가게에서 밥을 먹을 수 있던 볼리비아의 물가가 그립네



육전 닭전은 사실 밀라네사Milanesa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돈까스와 비슷한 음식이다

앞으로 닭고기 밀라네사는 시키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다....육전 1승...



함께 해주셨던 분덜 (이후 일정에서도 계속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다 남미여행 참 신기하고 재밌어)

밥을 먹고 나니 어느덧 오후 3시였다. 동행들은 6시 버스로 먼저 우유니로 내려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기념품 구경이나 해 보기루



산 프란시스코 광장 뒷편의 오르막길을 헤매다 보면 수많은 호스텔들과 관광객용 식당들, 그리고 기념품 가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오면서 기념품의 퀄리티가 미묘하게 변했지만...그래두 여전히 뽐뿌가 뽐뿌뽐뿌 오는 나란 호갱

그 와중에 기념품 가게들에서 팔리는 것들이 거의 같다는 (!) 사실에 좀 놀랐다. 이 기념품들은 어디서 만들어져 와서 어떤 루트로 유통되어 남미 곳곳에서 팔리게 되는 걸까 잠시 궁금해하기도 하고


동행 오빠들과 너나 할 것 없이 야마인형 열쇠고리를 질렀다. 많이 살수록 흥정하기 편했기 때문에 10개나 사 버림



가방에 소중히 넣고 산 프란시스코 성당 쪽으로 내려간다 흑흑 기념품 쇼핑이 제일 쉬웠어요


그러다 눈 앞에서 짠 오렌지 쥬스를 파는 아주머니를 발견함. 역시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다 마신 다음에는 괜히 아쉬운 듯 옆에서 알짱거리며 운 뽀끼또 마스...? 하여 한 잔 더 받아 마시는 거 다들 까먹지 말아 주세요 ㅠㅠ 설탕 한 스푼 안 들어갔을텐데도 슈퍼에서 파는 오렌지쥬스마냥 달고 시원하고 맛있어서 몇 잔이든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후식까지 클리어하고 우리는 낄리낄리 전망대로 출발했다. 세 명이 다니니 라파즈도 별 거 아니었네 (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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