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gabond/2014 Peru

D+22 : [Puno]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만만다린 2019. 4. 21. 15:47



2014년 12월 24일



알파카 스테이크와 민물가재 튀김과 함께한 행복한 밤이 지났구요


아침 일찍 푸노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우리는 새벽부터 짐을 이고 끌고 거리로 나가야 했다. 빵이라도 좀 챙겨서 나가라는 호스텔 아저씨의 자비 덕에 오늘도 행복합니다.... 아레키파는 정말 A부터 Z까지 로스 안데스 호스텔 아저씨 덕분에 살았네



오늘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였지만

아레키파에는 코파카바나로 가는 직행 버스가 없었으며. 오히려 훨씬 먼 거리인 쿠스코에서 출발하는 야간버스가 있었다..... (2014년 기준) 그치만 왜죠......아마도 길이 덜 험하고, 관광객들의 수요가 더 많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어쩐지 남*사랑 카페에서 본 여행 루트들이 전부 아레키파-쿠스코-코파카바나였던 이유가 있었다. 그냥 지도만 슥 보고 아레키파가 더 국경에 가깝길래 쿠스코 다음에 아레키파 가겠다고 계획 세운 김귤희는 머리 박으세요 ^_^


아무튼 그리하여,, 언니오빠와 나는 우선 페루의 국경 마을 푸노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출발하는 코파카바나행 버스를 예매해서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중간에 버스가 멈춰 서거나, 차가 겁나게 밀리거나 하지 않는 이상! 제시간에 푸노에 도착해서 국경이 닫히기 전에는 코파카바나로 출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즐거운 맘으로 푸노행 Cruz del Sur 버스 탑승. 

남미의 버스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자꾸만 목적지에 늦게 도착한다는 것.... 이건 나중에 볼리비아 여행 중후반 즈음에야 얻었던 깨달음이고 이때만 해도 페루 버스의 punctual함을 맹신했다... 



아레키파에서 푸노로 가는 길은 내 상상보다 훨씬, 실로 험했다.


처음에는 구불거리는 길 때문에 토하기 직전이 되었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깨니 이번에는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두통에 눈을 감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도를 켜서 위치를 확인해 보니 우리 버스는 웬 국립공원을 가로지르고 있었으며. 낯선 식물들과 들판을 뛰어 다니는 알파카 무리들이 이곳이 고산지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딴 건 일단 모르겠고 머리가 너무 아프네요ㅠㅠㅠㅠㅠㅠ 들고 탔던 배낭을 아무리 뒤져봐도 소로체필은 없었다. 캐리어에 넣어 버렸던 건가 ( •́ ̯•̀ ) 언니와 오빠는 나보다 한참 뒤에 앉아있었고 거기까지 갈 정신도 체력도 없었기에 그냥 다시 눈을 꾹 감고 잠을 청했다



그 와중에 창밖 풍경은 내셔널 지오그래피 채널이구요

남미에서 찍었던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하나




게다가 아레키파~푸노는 사실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버스 구간이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타는 cruz del sur 버스는 경우 이 구간에서 강도 사건을 하도 많이 겪어서 이제는 아예 야간버스를 없애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새벽 6시에 호스텔에서 기어나올 수밖에 없었지..


(그렇지만 아마 이 광활한 국립공원 안에서 알파카와 함께 강도질을 하는 건 아닐테고....훌리아카 근처에 강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국경 마을의 숙명이기도 하고, 실제로 이 버스도 잠시 훌리아카를 경유했기 때문에 창밖으로 내다볼 일이 있었는데 무법천지의 냄새가 풀풀 풍겼다)






두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대신 창밖을 구경해 봅니다

돌이켜보면 볼리비아까지 지겹게도 봤던 장면들이지만, 이때는 고산 지대의 고원이 처음이었으므로 모든 게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물론 저 야마와 알파카 떼가 가장 신기했어요,,,





각양각색의 호수도 나왔다. 신기해서 또 사진 우다다

나중에 우유니 사막 투어할 때는 '아 호수네.....' '또 호수네....' 이랬던 걸 생각해 보면 참 감개무량한 것



버스는 무법지대 훌리아카에 사람들을 우르르 내려주고는, 다시 1시간 여를 달려 푸노에 도착했다






푸노 전경과 저멀리 보이는 티티카카 호수. 돌이켜 보면 푸노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풍경이었다.


자는 사이에 차가 밀렸었는지 예상 도착시간보다 약 30분이 늦어져 있었다. 뭐 큰일은 안 나지 않을까 하며 일단 코파카바나로 가는 버스를 찾아 창구를 뒤지고 다녔으나. 우리에게 돌아온 건 '오늘 운행하는 버스는 끝났다'라는 대답뿐이었다. 어어엉ㅇ. 어어어어어어????? 국경 사무소가 저녁에는 닫기 때문에 다음날 오전이 되어야만 버스가 다닌다는 것. 아니 시바ㄹ 잠깐만요 그럼 우리 여기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야 한다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껏 무슨 일이 생겨도 될 대로 되라지로 살고 있었건만 ㅠㅠ 이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망연자실하여 터미널 한복판에 있던 우리에게 삐끼 아저씨들이 다가왔고 1인당 3만원 정도를 내면 코파카바나 시내까지 곧바로 택시를 태워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푸노 탈출에의 의지가 너무나 컸기에 우리는 일단 예약증을 쓰고 아저씨를 졸졸 따라 사무실까지 갔지만 막상 도착한 사무실에서 아저씨는 갑자기 말을 바꿔 택시로는 국경까지밖에 못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온종일 고산병으로 인한 두통에 시달리던 분노가 폭발하기 좋은 시점.... 스페인어를 현지인과 싸울 정도로 배워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전투용으로는 쓰기 부적합했던 게 아쉬운 점이었다 따흑


암튼 아저씨와의 협상은 실패했고. 결국 푸노에서 하루 자기로 함. 사무실 밖의 다른 삐끼 아조씨를 통해 터미널 근처의 허름한 숙소를 잡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코파카바나로 출발하는 1등 버스를 예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락한 1등버스를 생각하며 행복해하고 있었는데.....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리마 쿠스코는 정말 여행하기 편한 곳이었다. 페루 남부로 올수록 어째 분위기도 거시기해지고 우릴 등쳐먹으려는 분들도 많고 그랬었던 기억. 지금 돌이켜보면 전투력 넘쳤던 저 때가 그립다....지금 갔으면 그냥 10만원이라도 주고 코파카바나 가버렸을 듯)



터미널 근처에는 티티카카 호수의 우로스 섬으로 가는 선착장, 그리고 우리가 묵었던 것과 비슷한 레벨의 숙소들이 가득했다.

다들 이렇게 푸노에 발이 묶이시는 건가요  ( Ĭ ^ Ĭ )  


너덜너덜한 육체와 정신으로 들어간 호텔 방은 뭐랄까. 눈으로만 봐도 베드벅이 나올 것만 같은 그런.....방이었다. Y오빠는 벌레 스프레이 한통을 다 썼고 H언니와 나는 주섬주섬 침낭을 꺼내 그 안에 쏙 들어갔다. 그래도 우리 푸노 왔는데 좀 나가볼까? 하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세명 모두 그대로 다시 침대로,,★


그리고 비는 오후 8시가 되어도 그칠 생각을 않았다. 비는 맞아도 밥은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냐 하며 쫄레쫄레 밖으로 나가서 닭을 사왔다.



거부하고 싶어도 자꾸만 먹게 되는 닭구이와 감자


먹는 와중에 계속해서 창밖으로 폭죽소리가 들려왔다. 기분 탓인지 자꾸만 총소리(ㄷㄷㄷ) 비슷한 것도 들리는데 우리 그냥 얼른 자자.....하며 이브의 저녁은 침낭 속에서 꾸물꾸물대며 빠르게 마무리. 페루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미저러블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흑


어찌 되었든 내일부터는 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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