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1 : [Arequipa] 쉬어가는 아레키파
2014년 12월 23일
*
쿠스코에서 아레키파로
아레키파로 가는 밤버스 안. 쿠스코에서 얻었던 몸살감기에 대한 걱정에, 밤버스가 혹시 추울까 겁까지 먹은 채로 옷이라는 옷은 다 껴입고 버스를 탔었다. 결국엔 더위에 몸부림치며 억지로 잠을 청하게 되었지만요....
아레키파는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였다
눈을 뜨니 어느새 터미널에 닿아 있었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아레키파에서 묵을 호스텔을 찾아보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어제 스벅에서 웹툰 쳐 보지 말고 예매나 했어야 하는데 。•́︿•̀。
일단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부산 언니오빠ㅡ H언니, Y오빠로 불러야지 ㅡ 를 쫄레쫄레 따라가 보기로 했다. 우선 다음날 푸노까지 갈 버스를 같이 예매하고 (밤 버스를 끊으려 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아침 노선만 운행하고 있다고 했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 포스팅에....) 시내까지 갈 택시비를 흥정했지만 깔끔하게 흥정 실패. 어째서 사람이 셋인데 전투력은 0이었던 거죠?
그렇게 언니오빠를 따라 도착한 곳은 Los Andes 호스텔
H언니에 따르면 여기는 워크인으로 흥정이 먹히는 좋은 호스텔이라 한다.....택시비는 비싸게 냈으니 이번엔 성공하겠어!!! 하며 주인 아저씨와 숙박비 협상을 시도했으나 그 소문은 낭설이었는지 ㅜㅠ 딜은 먹히지 않았다. 대신 사람 좋아보이셨던 주인 아저씨께서는 새벽부터 기어들어와 몇 푼이라도 더 깎으려 애쓰는 우리가 불쌍해 보이셨는지 (ㅋㅋㅋㅋㅋㅋ) 이날 아침을 공짜로 먹게 해 주셨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사람이 좀 비굴해지고 작고 사소한 것에도 매우 기뻐하게 되는 것 같은데....아 시바 내 존엄성....하고 생각하면서도 언니오빠와 우와앙ㅇ악 하며 굉장히 즐거워하였다.
(그래서였을까 이날 먹은 아침은 지금껏 남미에서 먹었던 것들 중 단연 최고였고. 쳐먹느라 사진은 안 찍었네)
*
빵빵해진 배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언니와 오빠는 먼저 시내를 구경하러 나갔지만 나는 감기로 여전히 정신이 혼미했으므로. 2시간 가량 더 꿀잠을 잤고. 늘 그렇듯 잠에서 깨는 건 배가 고파서이다....고퀄리티의 아침도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어. 입고 온 맨투맨에 가디건을 걸치고, 쿠스코 정도 날씨겠거니 하며 밖으로 나갔지만, 아레키파의 날씨는 찌는 듯이 더웠다. 다시 기어들어와 반바지와 나시탑을 장착. 카리브해에서 입고는 처음이었구나.... 팔다리에 썬크림까지 치덕치덕 바르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아레키파 시내 구경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레키파의 첫인상
여기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페루에 와라즈 쿠스코 말고 또 뭐가 있겄냐...하며 무심히 론리플래닛을 뒤적이다 본 아레키파에 대한 소개글이 너무도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그런 글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저녁을 먹으며 H언니가 이 얘기를 하길래 매우 반가웠다. 론리를 꼼꼼히 읽는 사람이 또 있다니ㅋㅋㅋㅋ) 내용은 대강 ㅡ 마을 주변으로 화산 3개가 있고, 그 화산재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백색 건물들이 있으며, 저녁에는 불타는 듯한 석양과 아름다운 야경, 그리고 페루에서 손꼽히는 남부의 맛난 음식들까지 있다는 것. 여길 안 가면 내가 페루에 안 다녀온 게 되어 버리겠구만 하며 저 글을 읽자마자 일정표에 끼워 넣어 버렸던 거시다.
실로 아레키파는 페루 남부의 중심지이자 이 근방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이다. 식민지풍 건물들이 남아 있는 남부의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고. 페루 사람들에게도 쿠스코 못지 않게 사랑받는 동네!
숙소에서 1분도 안 걸리는 아르마스 광장으로 먼저 가 보았다
참 이 숙소는 다시 생각해도 위치도 만점, 시설도 만점에 아침도 맛있어,,,가격도 싸,,,,도대체 부족한 게 무였을까
소문의 백색 건물들과 붉은 페루 국기를 보고 내적 환호성
어딜 가나 비둘기 친구들
아니 잠깐만 비둘기 친구야 나 사진 찍잖아;;
아무튼 아레키파의 대성당은 유카탄 반도에서 봤던 성당들의 느낌도 나면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멋졌다.
탑골공원만큼 비둘기가 많았던 게...인상적이었지만요..
여긴 정말 보석이고 페루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다....
한참을 올려다보다가, 어디 그렇게 예쁘다는 백색 도시 구경도 제대로 해 볼까나 하며 성당 뒷편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대성당 뒤로는 이름 모를 성당
소문대로 길 양쪽에 흰색 돌들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서늘한 쿠스코를 떠나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더위였지만, 아아 좋은 산책이었어 (❁ᴗ͈ˬᴗ͈)⁾⁾⁾
그 와중에 지나치질 못하고
멕시코에서도 엠빠냐다는 종종 먹었지만 (집 옆에 전문으로 하는 가게가 있었다) 남미에서 먹으니 어쩐지 더 정통의 느낌이 나는 거시에요
맛은 묘하게 피자빵 혹은 피자만두와 비슷하다.
후식도 먹어줘야 합니다
아레키파는 치즈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고 한다. 리마에서 코티 남매가 사줬던 게 떠올랐다. 옛날 일 같은데 아직 일주일도 안 되었었다니.
아무튼 실제로 치즈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맛만큼은 최고입미다
이 골목을 돌면 또 뭐가 있을까! 하며 신나게 다니는데
....? 아름다운 백색 건물들은 이 골목에서 끝나버렸다. 옆으로 살짝 꺾자 여느 도시와 다를 것 없는 흙먼지 이는 번잡스러운 풍경이 나를 반겼다. 아쉬운 마음으로 점심을 먹을 식당을 찾아 헤매었다. 하지만 나의 여행운이 점점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지 제대로 된 식당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네
겨우 들어온 식당에서 먹은 수프
그리고 치차론 데 뽀요. 닭튀김 같은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
페루에서 먹었던 것들 중 손에 꼽히게 비쌌지만 맛도 없었....그냥 시장이나 갈 걸 그랬네
감기약 맛 디저트. 몸살기 때문인지 부루펜 먹는 기분으로 한 두 숟가락만 먹고 내려놓았다
*
그렇게 심드렁한 기분으로 호스텔에 돌아오고야 말았다 ㅜ^ㅜ
한 시간 정도 드러누워 쉬다가 다시 로비로 기어나가니 H언니가 돌아와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저녁을 다 같이 먹기로 하였고
다시 밖으로 나와 본다. H언니가 추천해 준 초콜릿 가게로 출발
위치 태그하고 싶은데 이미 5년이 지나서 그런지 구글맵에서 못 찾겠다..
초콜릿 케이크와 에스프레소를 시킴. 고작 4솔에 엄청난 크기의 초코케잌이 나왔다
아까 먹은 나의 창렬한 점심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가며 왠지 씁쓸한 기분이 되었지만요....
에스프레소 한 잔에 급격히 충전되는 중
몸살감기도 아니고 더위도 아니고 그저 나는 카페인이 부족해서 그렇게 병든 닭이 되었던 걸까....커피 없이는 못 살아요...
초콜릿도 2개 포장해 왔다. 위에 있는 건 코코넛 맛이었고 아래에는 피스코 사워가 든 술맛 나는 초콜륏
해질녘의 하얀 건물들. 알맞은 색깔로 물들고 있네
그렇게 6시쯤 언니 오빠와 다시 만나 저녁을 먹으러 간다.
호스텔 주인 아저씨에게 식당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하니 단번에 여길 알려 주셨다.
올라가면서 '비쌈의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하며 갔는데 그래도 언제 이런 데 와보겠냐 하며 쿨하게 입장. 이름처럼 옥상에 위치해 있어, 아레키파의 아르마스 광장과 까떼드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레스토랑이었다. 알파카 스테이크와 (뭐요...?) 아레키파 옆의 강에서 잡았다는 싱싱한 민물 새우로 만든 튀김 요리를 시켜 놓고, 넋을 놓고 다들 일몰을 감상했다.
눈 앞의 풍경. 시시각각으로 색깔이 변하는 와중에 성당에는 불이 켜졌다.
아레키파를 둘러싼 세 개의 화산들 중 하나라고 한다. 전망대 못지 않게 좋은 전망이었어...
석양이 유명하다는 아레키파다운 하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불타는 듯한 노을이 생기는 걸까.
하루종일 더웠던 아레키파이지만 밤은 춥답니다요
전형적인 멕시코 여름 날씨라 반가웠다 ^_ㅠ 웨이터 아저씨가 나와 H언니에게 판초를 하나씩 가져다 주시며 머리부터 풍덩 씌워 주셨다
그렇게 사방팔방을 둘러보며 멋있다고 난리를 치던 우리는,,문득 음식이 굉장히 늦게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런 풍경을 오래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었다.
Y오빠가 갑자기 내 카메라를 가져가더니 뭐 이렇게 이렇게 하면 빛이 어쩌구?? 하고 나서 찌거온 이상한 예술사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랜만에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밤이어서 또 행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만에 납셔 주신 오늘의 요리들
페루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피스코 사워를 페루의 마지막 도시 아레키파에서야 처음 먹는 나는 뭘까 ₍₍ ◝(・ω・)◟ ⁾⁾
웨이터 아조씨가 기념사진도 때려박아주심 /ㅅ/ 조리개 값...쫌 더 조절하고 드릴걸
사진 보니 그립네 다들 잘 지내고 있나아아요
맛났던 가재
그리고....너무 부드러워서 울면서 먹었던 알파카 스테이크 ㅠㅠ
불과 이틀 전 알파카 인형 사고는 이름까지 붙여줄 뻔 했던 나란 새끼....왜 또 맛있고 즐겁게 먹고 있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먹으면서 계속 '언니 오빠랑은 며칠 더 다니고 싶다' 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어서 좋았네
다 먹고는 스타벅스에 컵 사러 가는 길
막상 보니 컵보다는 텀블러가 예뻐서 그걸로 샀다
예전에 리마 게시물 쓸 때 언급했던 언니에게 졸업선물로 증정
이브 전날 밤이었는데 이미 축제 분위기
근처의 다른 카페에서 사이좋게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사서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덧 9시였고. 10시에는 다들 들어가서 씻자! 했지만 또 한참을 떠들다가 11시가 넘어서야 각자의 샤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 ◠‿◠ ) 페루에서의 마지막 (이라고 생각했던) 밤은 이렇게 끝. 내가 설마 다음날까지 국경을 못 넘을 줄 누가 알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