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gabond/2014 Peru

D+19 : [Cusco] 쿠스코 하루살기 (1)

만만다린 2019. 4. 19. 21:54



2014년 12월 21일




쿠스코에서 제대로 맞는 첫 아침


*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너무 추웠다. 잉카 사람들은 왜 이런 산꼭대기에 도시를 지어놔서 내게 추위와 두통과 기타 등등을 주는 것일까.... 한참 동안 침대를 떠나지 못한 채로 씻고 밥을 먹을지 or 먹고 씻을지를 한참 고민하다가 전자를 택했다. 



이 호스텔은 와이파이도 엄청 빠르고 침대도 푹신하고 다른건 다 맘에 드는데 샤워실이 1층에만 있어서 쪼끔 불편했던 것 (+위...치..)


샤워 도구들을 이것저것 챙겨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어느 샌가 폼클렌저 샘플 두 통과 바디클렌저 한 통을 다 써버린 걸 발견했다. 여행을 한 지 20일이 다 되어 가는구나. 아직까지는 한 날보다 할 날이 더 많다는 사실에 살짝 안도하면서 뜨신 물에 한참 샤워를 했다. 생각보다 남미에서의 샤워 질(?)이 굉장히 좋았따....다들 뜨거운 물도 잘 나오고. 최종보스 볼리비아가 남았으니 아직 안심하면 안 되겠지만 말임다. 



ㅋㅋㅋㅋㅋㅋ그런데 이거 블로그에 다시 올리면서 페루 아침밥상 사진들을 보다 보니 죄다 똑같이 생겨서 갑자기 웃긴닼ㅋㅋㅋ 오늘도 페루에서 많이 먹는 약간 거친 빵 두쪽과 동글동글 말린 버터를 먹었다. 암튼 호스텔 아침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전날 마추픽추에서 구르고 왔으니 뭘 먹어도 꿀맛이었겠지만 말이다.  특히 커피가.....그냥 가루로 된 커피믹스였는데.....이상하게 너무 맛있었다. 브랜드 이름을 봐 왔어야 하는데 ㅠㅠ 왠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서 한참을 꾸물거리며 천천히 마셨건만 그 동안 저 포장지 껍데기를 좀 유심히 보지 그랬니


*
오늘은 시내구경을 하고 기념품 쇼핑을 하는 것 말고는 일정이 없었기에 일단 11시 정도까지는 여기서 빈둥거리기로 한다. 다시 계단을 오르는데 20개도 안되는 갯수에 희한하게 숨이 차다. 그래도 더 이상 소로체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으므로. 몸아 적응해라 적응해 하며 천천히 깊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렇게 침대에 한번 누운 나는 지나치게 빈둥거리느라 열두시 반까지 일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해가 머리 위에 쨍쨍한 때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한 건 맞은편 빨래방에 들린 일.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하는 제대로 된 빨래라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๑°⌓°๑ 내가 드러운걸까 아니면 지금까지 빨래할 여유도 없이 열심히 다녔던 걸까



져은 아침..아니 점심이에요



첫 번째 목적지는 일단 배가 고프므로 시장임 암튼 시장임


근처의 산 페드로 시장으로 갔다. 접근성도 좋고 여행객들이 그나마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장이라 생각. 외곽에 다른 시장이 하나 더 있고 거기가 훨씬 싸다고 들었으나 저는 쫄보기 때문에 혼자 외곽까지 못 가욧




Caja Municipal이나 대문짝만한 Bienvenido만 봐도 어쩐지 당국의 가호(...?)를 받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관광객용 시장임



생각보다 한산해서 놀랐다




기념품 파는 곳들을 다 제치고 곧장 음식 파는 곳으로 갔다

가는 길에 과일 파는 아주머니들을 지나쳤는데 홀린 듯 바나나 한 덩이를 1.5솔에 삼. 장에 좋은 바나나는 내 여행의 조력자...이 소비는 헛된 것이 아닐지어다...



그렇게 바나나 한 봉지를 손에 들고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Bonita Linda 소리에 맥없이 넘어가서 ㅋㅋㅋㅋㅋㅋㅋ 바로 뒤의 어느 식당에 옴

시장에서 밥을 먹을 때는 현지인들 시선에 약간은 밍구스럽지만 여기는 관광객들 천지여서 약간 마음의 평화 얻었다...




5솔짜리 Sopa de pollo를 시키니 면까지 수북히 담겨 나와서 행복 Ⓗⓐⓟⓟⓨ


먹을 게 싸다는 건 지상 최고의 행복이다....암튼 약간 닭백숙 맛도 나는 게 너무너무 맛있었다. 다 먹고 일어서서 떠나려 하니 아주머니가 자꾸만 내 허리춤을 가리키며 뭐라뭐라 하셔서 뭐지 나 돈 냈는데? 아니면 치마가 꼈나(...)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가방을 앞으로 매라는 말씀이셨다. 위험하다고. 뜨악 왠지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정신을 말끔히 놓고 이 동네를 돌아다녔나 싶었네



암튼 배 빵빵해져서 다시 거리로





산 페드로 시장에서 광장까지 이어지는 길인데 별거 없지만 참 좋아서 매일 걸었었다 (동선상 매일 걸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악기 버스킹 하는 분들도 계시고 먹을 것도 많고. 좀 전에 아주머니 말씀도 잊고 연신 두리번거리는 나....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먹음. 이때부터였을까요 1일 1아이스크림의 시작이...



그러고보니 이날은 쿠스코에서 처음으로 파란 하늘을 봤다. 그 아래 빛바랜 아르마스 광장이 새삼 또 멋지네





다시 사진으로 봐도 너무나 그립다




그리워 쥬거 진짜


넋 놓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아 이걸 위에서 내려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오르막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른다는 산악인마냥 겸허히 언덕을 오르기 시작. 아무래도 69호수에 다녀와서 이상한 등산 본능이 생긴 것 같은데




올라가는 길의 볼거리들. 쿠스코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도 있다 <3



한편 여기도 다른 중남미 마을들처럼 길이 좋지는 않았고. 경사는 울 학교 기숙사 삼거리 수준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굽 있는 샌들을 신고 왔네? 하지만 맨발로 다니고 싶다는 충동은 길거리의 멍멍이똥들을 보고는 빠르게 식었다..




문득 힘들어 뒤를 돌아보면 나를 반겨주던 경치들



아까 산 바나나 두어 개를 까먹으며....등산을 한 지 얼마쯤 되었을까

왜인지 탁 트인 공터가 하나 나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꽤나 사람들로 붐볐고, 무대에서는 시끌벅적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예상치 못한 축제 분위기였다. 뭔가를 튀기는 냄새를 한참 맡으며 이게 뭘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꾸이(기니피그 통구이)였다........사진 찍은 게 있지만 공공질서(?)를 위해 티스토리에는 올리지 않을래....




날씨 진짜 너무 좋아 이게 무슨 일이야



흔한 쿠스코의 길거리 노점. 모든 품목에서 뽐뿌가 온다


암튼 장터 구경은 여기까지 하고 (돌이켜 보면 여기서 텐션이 너무 올랐다)

신나서 좀 더 위로 가야지~~~~멋찐 경치~~~~하며 대책없이 언덕을 올라갔다. 이내 또 다른 공터가 나왔고, 뒤를 돌아보니 빨간 지붕들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였고. 오르는 내내 나는 왜 자꾸 등산을 하지? 왜 오르막길을 가만 두지 못하지ㅡㅡ 하며 쓸데없는 본능이 생긴 나를 불쌍히 여겼지만 막상 올라와 보니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짜라란~~




문제가 있었다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거시에요... (유심도 선불폰도 암것도 없이 다니던 당시의 나)

와 멋지네 멋지네 하는 와중에도 뇌 한켠에서는 '내가 지금 어디지...여긴 뭐 하는 곳이지....' 하며 뇌비게이션 풀가동



게다가 아까의 그 시끌벅적함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주변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그저 멍멍이들만이 나한테 뭐 먹을 거 없나 기대하는 시선으로 주위를 맴돌 뿐....먹던 바나나를 던져 주었으나 다들 냄새만 맡고 나를 떠났다. 그래 개를 쫓으려면 바나나를 던지면 되는군요? ㅠㅠ



개들이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나의 푸어 리를 바나나

(그 와중에 여기 바나나 분홍색인 게 신기하다)


버림받은 바나나를 애써 무시하며 계속해서....여기가 어딘지 감을 잡아보려 했으나 내게는 지도 한 장 없었다. 사실 호스텔에서 받았는데... 어차피 있어도 길 못 찾으니까 앞으로 그냥 안 들고 다녀야지~~~하며 침대에 놓고 왔기 때문인데요. 시발 어쩌지. 일단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 보면 감이 오지 않을까 하며 나는 3차 등산을 시작..



그러자 갑자기 이런 뷰포인트가 나왔다. 금방이라도 쿠스코에 사랑고백 하고 싶네




며칠간 비가 왔다는데 역시 나는 날씨요정이 맞나봐 ╰(*´︶`*)╯♡

(날씨가 좋을 때만 나오는 편향적 추측)



멀찍이 보이던 아르마스 광장의 성당들




쿠스코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이때는 5년 전이니 그렇다 쳐도 이제는 왠지 남*사랑 같은 곳에서 유명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사람이 너무 없었고 다만 껄렁한 페루 청년 3명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오래오래 앉아서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싶었는데 쫄아서 그냥 내려왔다....안녕 전망대...




내려가는 길. 굽 있는 신발은 내리막길이 더 고통스러우므로 적당한 계단이 보일 때마다 잽싸게 앉아서 쉬다 가곤 했다 (사람 없음에 감사)

계속되는 쿠스코 레이드는 투비컨티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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