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gabond/2014-2015 México

D+3 : Chitzen Itza

만만다린 2019. 2. 17. 17:16


2014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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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뜻밖의 미니멀라이프를 즐겼던 메리다를 떠날 시간....

수많은 인파를 피하고 싶어 치첸잇사로 가는 버스는 아침 일찍 타려고 했지만, 늦잠을 자서 이 계획은 좌절되었다. 새로 산 캐리어에 느릿느릿 짐을 싸면서도 설레기보다는 며칠째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던 위장병 때문에 걱정이 한가득일 뿐이었음


치첸이사까지는 2등버스인 Oriente를 타기로 했다. 유카탄에 오니 지금까지 타고 다니던 버스 회사와는 다른 걸 타야 하는 게 새삼 신기하였다.

배낭이 가벼워진 것에 만족하며 푹푹 찌는 이곳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터미널까지 걸어가기로 했으나,,호스텔 로비에서 A4용지로 본 지도와 실제 거리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었고 나샛기 어쩌자고 남으로 10블록 서쪽으로 8블록을 그냥 걷겠다고 나오신 건지? ^^



중남미 여행 하면서 길거리에서 욕 마니 했는데 아마 이때부터가 시작 아니었을77ㅏ



암튼 우여곡절 끝에 치첸잇사행 2등 버스에 올랐다

멕시코 남부의 1등 버스인 ADO는 중부의 2등 버스에, 그리고 남부의 2등 버스인 Oriente는 중부의 3등 버스에 각각 대응되는 건지는 몰라도 소박한 시설과 안전띠가 없다는 사실에 심장이 쫄깃해져 왔다..꼬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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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2등 버스는 시설뿐 아니라 소요 시간에서도 차이가 난다. 메리다에서 치첸잇사까지는 1등 버스를 탄다면 1시간 반 정도가 걸렸겠지만, 이날 나는 2시간 반을 버스에 갇혀 있었다. 차 두 대가 간신히 서로 비껴가는 좁은 시골길을 달리며, 우리 버스는 끊임없이 정차하며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주고 또 태웠기 때문이다. 창밖으로는 계속해서 새로운 풍경이 지나갔다. 중부에서 지겹게 보던 키 작은 나무들과 선인장, 건조한 초원 대신에 빽빽한 야자수들이 있었고. 시골 마을의 간이 정류장에는 어김없이 코카콜라 그림이 벽 한가득 그려져 있었다.



그렇게 (모든 관광객들이 길을 나섰을) 열두시가 되어서야 치첸잇사에 도착한 나..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피라미드라고 하면 첫째는 시티의 테오티우아칸, 둘째는 이곳 치첸이사일 것


그래도 치첸잇사는 칸쿤의 고급 호텔에서 투어를 오는 사람들이 주 타겟이라 그런지, 몇개월 전 방문했던 테오티우아칸보다는 좀 더 말끔한 입구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먹거리 파는 키오스크들도 잘 되어 있었고. 실로 가이드북에서도,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에서도 치첸잇사는 일찍 갈수록 사람 없이 한적하게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 그치만 늦잠의 본성을 거스를 수 없는 저는 망했구요 ^_^ 이날 이후로 늦잠의 폐해를 깨닫고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나 설렜던 건 드디어. ! ! ! 며칠간 나를 괴롭히던 위경련이 거의 나았는지 피라미드 한복판에서 화장실을 찾아다닐 일은 없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평화로운 복부와 함께 즐겁게 치첸잇사 안쪽으로 출발. 지난 이틀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므로 여행 4일차인 이날에서야 드디어 셀카봉을 개시하게 되었네 휴




초록초록한 유카탄의 풍경. 중부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어서 좋았다

그렇게 길을 따라 양쪽에 늘어서 있는 기념품들을 구경하며 앞으로 가다 보면




바로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

치첸잇사에서 가장 유명한 피라미드인 Castillo de Chitzen Itza가 나오는 것. 아니 이렇게 바로 나와버리다니? 아직 이걸 볼 준비가 안 되었다구욧...



테오티우아칸에서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를 보려면 안으로 한참 들어갔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참 잘생긴 (이런 말을 피라미드에 써도 되냐) 생김새 아닌가여.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외국놈들에게 사진 부탁하는 건,, 그래 이제 기대를 버리도록 하자



어마어마한 수의 가이드 투어 무리에 놀라는 것도 잠시


쿠쿨칸의 신전(Templo de Kukulcan)이라고도 불리는 이 피라미드는 테오티우아칸에서 봤던 태양의 피라미드보다는 확실히 작았다. 올라갈 수도 없어서 매우 아쉬웠지만 워낙에 작고 계단도, 가로폭도 좁은지라 개방했다가는 헬게이트가 열릴 것 같아서 납득함

Kukulkan은 치첸이사 자리에 있던 옛 문명을 파괴하고 새로이 이 문명을 건설한 영웅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형상은 깃털 달린 뱀이었다고 한다. 아즈텍 문명의 켓살코아틀에 대응되는 신이라 할 수 있겠다. 중앙 고원의 톨텍 문명 (아즈텍 문명의 뒤를 이은 문명이다)과 이 문명이 연관이 있기 때문에 세계관도 유사한 것.



그리고 테오티우아칸처럼 여기서도 피라미드를 지을 때 특별한 수학적 원리가 적용되어 있기 때문에, 계단 앞에서 저렇게 박수를 짝짝 치면 피라미드에서 뾱!뾱! 하고 응답하듯 소리가 반사되어 나온다. 4면의 계단마다 관광객 무리와 가이드들이 모여서 다같이 박수를 치고 있는 게 재미있었다


천문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52년마다 한 번씩 있었던 종교 행사 때마다 피라미드 아래에 조각된 쿠쿨칸의 형상이 계단 전체로 크게 드리워지도록 태양의 위치와 잘 조응되어 설계되었다고 함. 이상 라틴아메리카학+가이드 투어 도둑질(?)이 내게 안겨준 잡지식들 끝..




피라미드 옆의 전사의 신전

알기로 원래 전사의 신전은 올라갈 수 있었던 거 같은데...? (14년도 기준) 막혀 있었더라. 치첸이사 전체가 보수중인 것 같았다

여기서도 인신공양을 해서 심장을 바쳤다고 들어서 제단이 보고 싶었는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다



그리고 천 개의 기둥이라 불리는 곳



장소의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초록초록 숲길도 지나고 이름 모를 돌무더기들도 지난다....지식이 짧으면 가이드를 썼어야 하는 것을



그렇게 피라미드 오른쪽의 유적들을 다 보고 다시 돌아온 나의 핸썸 피라믿



이게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건 한국에 돌아와서 알았다. 알았으면 조금 더 열심히...안내판도 읽구...그랬겠찌 그치만 넘ㄷ ㅓ워써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유카탄 반도는 중부보다는 정글에 가까워서 나무==그늘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떼오떼우아깐의 햇빛에 착실히 토스트처럼 몸을 구웠던 나에게 이곳의 그늘들은 너무도 소중한 쉼터였다.



이어서 피라미드 왼편을 보러 ㄱㄱ



Juego de Pelota 말 그대로 공놀이장이다.

멕시코시티 인류학박물관에 갔을 때 이걸 비슷하게 재현해 놓은 걸 봤던 기억이 남




마야인들의 구기 종목은 배로 공을 튀기는 희한한 스포츠였는데 이 경기장의 신기한 점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향해 소리치면 그 말소리가 뚜렷하게 들리는 점이라고 한다. 음향 설계 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저 가이드 투어에서 엿들음.....

소리치는 거 실험해 보고 싶었는디 솔플러는 웁니다




아 새삼 한번 더. 치첸이사는 진짜 아름답구나. 풀숲과 고대 유적의 조화라니.




어느 각도에서 봐도 멋진 피라미드까지



착물도 발견했다. 박물관 안에 얌전히 있던 착물이 아니라 이렇게 바깥에서 햇볕 쬐는 착물이라니 이건 좀 무서운데요;;

저 배 한가운데에 태양신에게 바치는 심장을 올려놓는다고 한다.




길 안쪽에는 왠지 흥미로운 볼거리가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한참동안 땡볕과 무한 호객행위에 시달리며 걸음을 옮겨 보았는데




이런 곳이 나옴

성스러운 세노떼Cenote Sagrado 라는 곳었다. 석회함 침식 지형(싱크홀)인 세노떼는 마야 문명에서는 말 그대로 성스러운 우물로 여겨져 신께 제사를 지낼 때마다 이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인신공양으로 던져졌다고 한다. 아니 잠만 이 부지 안에 벌써 인신공양 스폿이 몇 개인 거에욬ㅋㅋ코와이



암튼 그때는 성스러웠다지만 지금은 그저 썩은 물이었을 뿐이고....내가 이 날씨에 이걸 보러 여기까지 걸어왔나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걸음을 돌려 본다....


출구로 가는 길엔 쿠쿨칸의 피라미드 모형과, 보희한테 선물로 줬던 마야 달력 자석을 샀다.

네고의 달인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경험치를 쌓는 중



슬슬 넘어가는 12월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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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약 2시간만에 구경을 마쳤다. 생각보다 좀 빨리 봤나 싶었는데 걍 나옴. 알고 보니 옆의 유적 하나를 통째로 안 갔떠라 껄껄

암튼 허름한 매표소에서 바야돌리드로 가는 버스표를 사서, 정류장에 쭈구리처럼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외국인 커플 여행자 3쌍이었고 유적지 내부의 수많은 가족 단위 관광객들로 면역이 약해진 와중....의문의 1패...




그 와중에 2시 20분에 온다는 버스는 무려 3시가 될때까지 나타나 주지 않았다. 다들 굉장히 초조해하며 여기저기 물어보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아아....나는 이번 학기 여러 번의 버스 탑승 경험으로 이미 깨달아 알고 있던 것이었다. 멕시코의 2등 버스란 원래 이런 거야 이놈들아....포기해....그렇게 40분 가량 바닥에 주저앉아 있으니 마침내 저멀리서 폴폴 흙먼지를 날리며 Oriente 버스가 도착했다. 짐 올리느라 낑낑대는데 커플 무리 중 한 남자사람이 올리는 걸 도와줘서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싶었다.


목적지인 바야돌리드까지는 한 시간이 걸렸고 나를 포함한 버스 안의 모든 승객들은 쥬근 듯이 잠이 들었다. 치첸이사는 유적지니까 제외하고ㅡ내 두 번째 유카탄 도시인 바야돌리드는 투비껀띠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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