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gabond/2016 東京, 横浜, 江島

첫날 : 나리타에서 아사쿠사 스타벅스까지

만만다린 2017. 9. 23. 15:42

 

2016년 8월 18일

 

 

결과 발표가 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국을 한 번 떴다가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고른 곳이 도쿄. 정신이 반쯤 외출해 있는 상태였으므로 여행 준비도 내가 아닌 남처럼 해버렸다. 싫어하는 상사 출장 준비 해주는 느낌......그래 바로 그 느낌이었을 거다.......출발 2주 전에 급히 비행기표를 사고, 비행기 타기 5일 전에 2차 과제 발표와 임원면접을 가까스로 끝냈고, 이틀 전까지 매일 술을 퍼마시고 외박을 했고, 바로 전날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놀며 오후 시간을 전부 보내버렸다. 

 

그렇게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밤 9시. 짐싸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고 가서 무얼 할지 계획이요? 그딴 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술에 거하게 취해 막차를 놓친 아빠가 내 방에 도착해버렸다. 뜻밖의 취객을 맞이한 김귤희는 그만 그 자리에서 말을 잃고 마는데🥲

아빠를 겨우겨우 재우고, 외장하드를 뒤지며 한때의 애청곡들을 갤6에 담고, 캐리어에 화장품들을 보이는 대로 때려넣고 나니 잘래야 잘 수가 없는 상태였고. 4시 반 리무진을 타기 직전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야만 했다.

*
아마 2년 전 멕시코로 갈 때도 이 시간에 리무진을 탔었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공항에 간다는 사실에 놀랐더랬지. 그땐 비가 오고 있었는데, 이날의 공기도 그날처럼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지만 하늘에서는 물 한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늘 술에 취하면 빵을 사 오는 아빠 덕분에 공짜로 획득하게 된 팥빵을 오물오물 먹으며 뒤늦게 못 잔 잠을 청했다.

 

 

새벽 6시 반의 인국공은 인파로 가득하기 때문에, 게이트 앞 푹신한 의자에 앉아 여유를 즐기기 위해선 모든 걸 빠르게 처리해야 한답니다..

가장 먼저 써니뱅크 ATM에 줄을 길게 서서 엔화를 찾는다.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졸라 헤매서 나 까딱하면 출국장 늦게 들어갈뻔. 담엔 웬만큼 급하지 않는 이상 환전은 미리 해서 가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무사히 발권까지 완료 ★

 

 

2년 전 멕시코로 갈 때의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네. 그땐 나리타에서 한 번, 그리고 텍사스에서 두 번 지옥의 더블 환승을 거쳐 D.F에 도착했었다. 첫번째 나리타행 비행기를 탔을 때 얼마나 떨리고 노정신이었는지......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자꾸 떠오르더라 ㅠㅅㅠ 그리고 저는 왜 그때처럼 허둥대며 출국장으로 들어가고, 수속에 짐검사까지 마치고 있는 것일까욬ㅋㅋㅋㅋㅋ 남미에서 지겹게 비행기를 탔으니 이젠 뭐 고속버스 타는 정도로 가뿐히 타고 내리지 않을까!?!! 했지만 말입니다. 다만 조금 더 능숙한 척을 잘 하게 되었을 뿐이구요. 와따시의 댕-청함은 어디 가지 않았습니다. 

 

면세점 인도장 줄을 잘못 서서 불필요하게 30분을 추가로 낭비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비행기에 오른다. 애정하는 나의 감귤항공

 

 

몽롱한 정신을 애써 감추기 위해 할리스 아아를 땡기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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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까지는 두시간 이십분이 걸렸다. 
가는 길에 언어의 정원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당연하게도 의자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어버렸다. 옆자리에 일본인 아주머니가 앉으셨기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틀기에 왠지 민망하기도 했고. 뭣보다 수면시간이 0이었기에 너무나도 피곤했던 것이다. 잠 못 자고 비행기 타는거 고문이라는 건 푼타 아레나스에서 멕시코시티까지 환승에 환승을 거듭하며 날아갈 때 이미 깨닫지 않았냐.....나는 도대체 어쩌려고 첫날부터...(쥬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일본에는 예보대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연 몇달째 우산거지로 살고 있는 김귤희는 우산 따윈 챙겨오지 않았습니다. 진즉에 3단우산 하나 사지 못한 나의 게으름과 금전적 빈곤함을 탓하는 와중, 정수리 위로 도쿄에서의 첫 비가 사정없이 떨어졌다. 

 

 

 

유심칩을 사느라 또 어드벤쳐가 잔뜩 있었지만 이건 생략하고  (요약하자면 유심칩은 한국에서 사오자는 것*^^*) 지하철을 타러 갑시다.

일본, 그 중에서도 토오-쿄오의 지하철은 헬중헬이라 들었다. 잔뜩 긴장을 했지만 다행히 내가 간 플랫폼에서는 내가 탈 열차만 오더라. 무사히 아사쿠사로 가는 NARITA SKY ACCESS 열차에 탑!승! 

 

지칠대로 지쳐 있었지만 5년만에 보는 일본의 낮은 집들과 탁 트인 산과 들을 보고 있자니 쉽게 잠들 순 없었다.

 

*

 

 

1시간도 더 되는 먼 길을 거쳐 아사쿠사에 도착함. 내 숙소가 있는 동네이자, 일본 사람들이 사랑하는 유명한 절인 센쇼지가 있는 곳이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역 근처의 풍경. 이게 얼마만의 일본이냐 (1학년 때 간사이 여행 이후 무려 5년만이었음) 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 풍경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볼 수 있게 도와주신 아사쿠사 전철역 안내원 아주머니 감사합ㄴ디ㅏ....

6일 간 나를 재워줄 숙소인 Bunka Hostel으로 캐리어를 끌고 열심히 걸어갔지만 체크인은 4시부터였다. 

 

 

 

1층은 카페 겸 이자카야, 2층부터 7층까지 호스텔인 이곳

매우 깔끔한 시설과 스윗한 스탭들 덕분에, 일주일 내내 숙소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었다구 한다. 위치도 짱이고 담에 도쿄 와서 호스텔 묵을 일 있으면 무조끈 여기임

 

*

일단 어깨 무거운 백팩을 캔버스백으로 바꿔 들고는, 동기들에게 추천받은 '우나테츠'라는 장어덮밥집으로 향했다.
(이번 도쿄여행에 미리 세워온 계획이나 알아온 정보 따윈 없었지만 그나마 유용한 쏘쓰가 있다면 바로 인턴 동기님들의 지식과 조언.... 여러분 고마웠어....)

 

 

요깅

그러나 우나테츠 찾기 대모험(!)을 떠나자마자 비가 우르릉쾅쾅 쏴아아아아ㅏ 하며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니 저기요 날씨야 나한테 왜이러냐. 걸어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였지만 한국에서 신고 온 흰색 케즈 스니커즈는 이미 누더기가 되었구요 ^_ㅠ 

설상가상으로 구글맵에 위치가 잘못 나와있었으며, 겨우 맞게 찾아왔음에도 내가 간판에 써진 한자를 제대로 못 읽어서.....(쿠궁) 코앞에서 헤매고 다니느라 비를 더 심하게 맞을 수밖에 없었다. 

 

+ 일본어를 몰라서 겪는 서러움은 공항에서 유심 살 때부터 끈덕지게 나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어디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니나 보자구ㅠ

+ 내가 우나테츠를 찾아 헤맬때는 위치가 잘못 나와 있었지만, 저 구글맵 위치는 아마도 맞을 것이다.

 

 

어쨌든 무사히 가게 안으로 입성. 이랏샤이마세! 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두근두근 도쿄에서의 첫 식사.

 

 

..는 뜨거운 물수건을 받아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니? 음? 지금 여름 아닌가여?

이땐 몰랐지만 일본의 식당들은 죄다 뜨신 물수건을 내어 주더라 헤헿,, 5년만이라 다 까먹었나봐

 

원래 먹으려고 했던 메뉴는 가장 저렴한 우나기동이었지만, 어쩐지 재료가 모두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말 들으면 의심부터 되는 저 정상인가요....그래서 맘속으로 광광 울며 3000엔이 훌쩍 넘는 히쯔마부시를 시킨다.

 

 

정갈하게 나온 밑반찬들. 재료가 매우 낯설고 맛도 신기했다. 깔끔한 나무젓가락도.

 

 

그리고 두둥....정신 나간듯한 비쥬얼....정녕 이게 제 입에 들어올 예정이란 말씀이십니까..

 

 

 

히쯔마부시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조경규님의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이다.

66화 '장어구이를 향해 불법 유턴' 편에 등장하는 나고야식 장어덮밥이 바로 요 히쓰마부시이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장어구이 덮밥을 무려 3가지 다른 방법으로 먹는다고요???? 도랏??? ㅠㅠㅠㅠ 하며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지 하고 결심했는데. 이렇게 우연찮게 폭우가 쏟아지는 아사쿠사역 근처, 어느 장어집에서 맛보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먹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매우 친절한 문법으로 그렇지만 어색한 한국말로 쓰여 있는 설명판을 내게 건내주셔서 감동했다)

1. 그냥 먹는다
2. 채썬 파, 김가루, 와사비와 함께 먹는다
3. 뜨신 녹차를 부어 오챠즈케처럼 먹는다

글만 봐두 쩔어주는데여. 그렇게 조심조심 덮밥을 3등분하고 시키는 대로 먹기 시작했다. 근뎈ㅋ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육성으로 스바라시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바삭한 장어 겉면과 딱 내가 좋아할 만큼의 탄맛 그리고 입에 넣자마자 사라져버리는 부드러운 속살....으어으응....눈 깜짝할 사이 해치웠다 ㅠㅠ


나의 베스트는 마지막 3번 방법이었는데 내가 바로 이 구역의 오챠즈케 빠순이이기 때문이다. 물에 밥을 말면 맛이 없을 수 없죠.

 

 

두번째 방법으로 쳐묵쳐묵하는중
먹는 내내 한국사람들이 들이닥쳐 흥미로웠고. 아사쿠사에 오면 무조건 이걸 먹어야 해!!! 라고 외칠 수 있을 만큼 대박적으로 맛있었다.

폭풍우 몰아치는 날씨에 여기까지 와서 비싼 돈 주고 히쓰마부시를 먹는 당위성을 제공해 주는. 그야말로 스바라시이이! 한 식사였달까

렇게 흔쾌히 삼만여원을 점심식사값(도랏다....)으로 쾌척하고 밖으로 나왔다. 폭풍우 수준이었던 비는 어느덧 허리케인 수듄으로 몰아치고 있었다. 발이 쫄딱 젖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 한참을 식당 맞은편의 백화점 안에서 망설이다가, 저멀리 보이는 반가운 스벅 간판을 향해 돌진했다. 

 

 

아이스 코-히를 어설프게 주문하고는 면세점에서 받은 빨간 몰스킨에 끼적끼적 여행기를 쓴다. 

(이때 쓰고 한동안 방치해놨다가 결국 지금까지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거시 함졍)


그렇게 여행자들의 좋은 안식처 스벅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비가 좀 잦아들고, 시계를 슬쩍 보니 체크인 시간이 다 되었네

6박을 자야 하는 숙소이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침대 1층 자리를 사수해야만 했다...총총 급한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공사중 안내판

 

 

비 내리는 아스팔트엔 묘한 광채가 도는데 난 그걸 너무 조아해

 

그렇게 Bunka Hostel로 급히 돌아가 체크인을 완료. 귤쓴이의 미친듯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어찌되었든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려 하고 있어!!!!! 는 투비_컨티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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