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1 : 마드리드 카운트다운!
2016년 12월 31일 마지막 밤
낯선 차마르틴 역에 도착
츄에카 역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이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이 역에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따위는 없었던 것.... 뚠뚠해진 캐리어를 끌고 낑낑대며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지금 이 짐덩이가 내 손에서 멀어져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해도 아쉽지 않을 정도였다. 몸이 힘들면 모든 물욕이 사라지고 이성도 사라지는 것이요...
오늘 1박을 할 곳은 hostal chueca
요즘 마드리드에서 젤루 팬시한 동네 중 하나라는 츄에카의 힙함(?)은 여기도 예외가 아니었는지, 전혀 호스텔 같지 않은 입구 때문에 못 찾고 한참을 길에서 서성거렸다.
체크인 바로바로 안 해주고 좀 늦게 해줘서 약간 심통남. 제일 높은 층인 5층을 배정받아 위로 올라간다
구린 표정을 애써 숨겨봄,,
로비의 혼란함
한국 사람들에겐 1도 유명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외국인들 틈바구니에서 잘 수 있었고 그것이 소소한 행복과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짐도 풀었겠다,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길을 나선다
츄에카 역 근처는 정말이지 힙함 그 자체였는데, 흔한 연말 조명조차 뭔가 색다른 느낌
무지도 있다니 말 다했죠? 스페인에서 보는 무지 넘 신기하잖아 @_@
그러다가 키코를 발견
색조 화장품 잘 쓰지도 않는데 구경하는 건 왤케 재미난가 몰라
그리고 키코처럼 서양 언니들 화장품 가게에 오면 온갖 재미난 색의 립스틱ㅡ고동색부터 노란색, 파란색 등등까지ㅡ들을 구경할 수 있어 즐거움
홀로 방황하는 여행객이 마드리드에서 갈 곳이란 역시 솔광장 뿐인 것인가....하며 익숙한 솔광장으로 가 본다.
몇 시간 뒤면 맘대로 입장도 못 할 이곳 솔 광장. 다들 12월 31일의 밤을 보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저 웃기게 생긴 모자 좌판들ㅋㅋㅋㅋㅋㅋ하나 사 볼걸 그랬어 쥬르륵..마드리드의 인싸가 될 수 있었는데
언제 또 와 보겠니 하며 그랑 비아 거리 산책
그리울 거야 꼬르떼 잉글레스ㅠㅠ
한국 돌아갈 때 소소하게 사갈 만한 식료품이 있나 하며 들어가 본다
포도알 발견!
스페인에서는 재미난 연말 전통이 있는데, 카운트다운 후 1월 1일을 알리는 종이 12번 울릴 동안 12알의 포도를 다 먹으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멕시코에도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14년 연말에 나는 우유니 마을의 허름한 놀이터 미끄럼틀 위에 있었즤....
먹기 편하라고 Sin Pepita(씨 없음)로 골라 보았다.
와인도 마시고 싶었지만 길거리 혼술은 자신이 없스요
그렇게 포도알 말고는 별 소득 없이 거리로 나왔다.
다시금 마주한 혼돈의 결정쳌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하염없이 마드리드의 번화가를 걸어다녔다.
연말이고, 왠지 혼자 보내기는 싫고, 그치만 동행할 사람은 보이지 않고, 유랑에 글을 올리려니 등업이 안 되어 있는 슬픈 상황....애써 외로움을 외면하며 걷다가, 최대한 나에게 부담을 안 줄 것 같은 캐쥬얼한 식당을 골라 들어간다.
앞으로의 삶은 띤또 데 베라노 없는 삶이라니요? 상상할 수 없어ㅠㅠ
역시나 바를 겸하고 있는 식당이어서 그런지 시킬 메뉴는 마땅히 없었고..
그나마 이런 걸 시켜봄. 맛있는 홍합과 감자였다.
12월 31일에 혼자 바에 와서 안주와 띤또 데 베라노를 20여분 만에 죠지고 나간 동양인 여자애에 대해 이 가게에서는 뭐라고 생각했을까 쩝
그렇게 다 먹고 거리로 나왔지만. 00시까지는 한참 남은 상태. 시간이 도무지 안 가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아까 마트에서 사온 오렌지 초콜릿이나 까먹어 본다 쩝
*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를 두어 시간. 이제 슬슬 나가서 좋은 자리나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며 밖으로 나가 본다.
....그치만 다시 솔광장으로 나가니 헬게이트 오픈이구여?
기왕이면 광장 한복판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통제 중이었다. 뀽
혼돈의 결정체
솔광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기나긴 줄
방황하는 나의 시선...
아니 이 줄 실화냐고욬ㅋㅋㅋ정말 끝도 없이 서 있었다.
이 줄의 끝은 어디일까 하며 하염없이 따라가다 보니 무려 오페라 역이 나왔다. 지금 역 하나 거리만큼 줄을 선 거야? 절레절레
오페라 역 근처에 온 김에, 사랑하는 마드리드 왕궁을 한번 더 보기로
밤에도 이렇게 멋지다니 이건 반칙이야
내 첫 유럽 왕궁....많이 보고싶을 것....ㅠㅠ
화장 지운 밍밍한 얼굴쓰
왕궁 앞 공원엔 개미새기 하나 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나도 참 아무리 연말이고 스페인이 안전한 나라라 해도 혼자 늦은 시간까지 싸돌아 다닐 생각을 하다닠ㅋㅋㅋㅋ쩝
바로 옆의 알무데나 성당도 가본다.
밤의 성당은 늘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가까이 가면 절로 소름이 돋게 됨.
저멀리 자동차 불빛들을 보고 있자니 마드리드에 10년은 산 것 같은 정겨운 기분이 들었다.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본다는 건 참 묘한 경험인 것.
안녕 너도 많이 보고 싶을테야
그건 그렇고 저 울타리 뒤에 조각상 거의 호러영화 수준으로 무섭네 포스팅 하다가 깜놀
이렇게 곳곳이 통제되어 있고 경찰차들이 서 있다 보니 뜻하지 않게 겁을 먹곤 한다
다만 모두가 솔 광장 근처에 모여 있기 때문에, 이날 밤 김귤희는 정말 자유롭게 사람 하나 없는 마드리드 골목들을 누비고 다녔다.
정말 고즈넉하고, 정겹고, 문 연 가게는 거의 없는 텅 빈 거리이지만 그곳을 비추고 있는 가스등들은 너무도 따듯하고.
잊을 수 없을 거야 그치
아마 다시 돌아간다 해도 솔광장 입장줄을 서기보다는, 이렇게 변죽만 울리며 다녔을 것 같다. 후회는 없어
컴컴한 산 미겔 시장도 지나가 봄
메손들이 가득한 이 거리까지. 사람들로 가득 찬 낮에는 결코 볼 수 없었을 그림들이었다.
이렇게 한적한 마요르 광장 본 적 있으세요?
오 씨 그러고보니 뚜론 사는 걸 잊었네. 이 집에서 꼭 사보고 싶었는데
결국 아쉬운 대로 내일 공항에 가서 아무 브랜드 거나 사서 돌아가기로 한다. 어쨌든 뚜론은 맛있잖아여 그쵸?
아직도 열한시이고 남은 한시간은 어디서 보내야 하능가
....하며 여기저기 또 돌아다니며 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덧 사람들이 솔 광장 근처의 모든 골목들에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고, 나 역시 그 가운데에 갇혀서 옴싹달싹 못하게 되고, 어디선가 큰 소리로 안내방송이 들리고,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니
새해 종이 울리고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정말 꽉 끼어서 가방에서 포도알을 꺼내는 것도 너무 힘들었지만ㅋㅋㅋㅋㅋㅋㅋ겨우겨우 손에 들고 12번 종이 울리기 전에 12알을 삼켰다. 이때의 내 머릿속에는 온통 다가올 회사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저 모든 게 평온하기를 빌었다. 참 어려운 소원. 그 덕분이었는지 츄에카 역까지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몇 시간이나 잘 수 있을까....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